"키 크는 것은 포기했어요, 작으면 어때요, 벽만 잘 올라가면 되죠." 키 152㎝의 여고 2학년. 교실 맨 앞줄을 맡아놓을 만하다. 이 자그만 키의 여고생이 세계적인 스포츠클라이머 대열에 서고 있다. 스포츠클라이밍 아시아챔피언 김자인(일산동고2)이 그 주인공이다. 강력한 우승 후보인 김자인은 두 오빠 자하(숭실대2), 자비(숭실대1)와 함께 오는 26일 열리는 아시안X게임2005에 출전해 암벽타기의 진수를 선사한다. 아직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호주의 사만다 베리와 라이벌 일본의 토모토 오가와가 출전하지만 기량이 급격히 향상되고 있어 자신감이 넘친다. 동계훈련도 충실하게 받아 근력도 많이 향상됐다. 장점인 날다람쥐 같은 스피드에 힘까지 더해진 것. 김자인이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암벽등반을 하는 아버지가 멋있게 보여 조막 만한 손으로 암벽을 타기 시작했단다. 오빠들을 따라 체력테스트를 받았는데 체력이 오히려 오빠들을 능가한 것도 하나의 계기였다. 취미삼아 시작했지만 워낙 뛰어난 기량을 보여줘 중학교 때부터 전문적으로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중3때부터 클라이밍 월드컵에 출전한 김자인은 지난해 중국 상하이대회에서 7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국내 대회에서는 거의 독보적. 지난해 전남 영암에서 열린 아시아스포츠클라이밍선수권대회 난이도 경기에서 1위에 오르며 아시아 최정상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 체코 브르노에서 열리는 월드컵은 김자인이 세계 최정상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세계 정상에 오르는데 작은 키가 걸림돌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다. 팔다리가 길어 홀드 간격이 넓은 구간에서 유리한 데다 몸을 웅크려야 하는 구간에서도 작은 몸이 더 적합하다. 1년 이상 키가 1㎝도 크지 않은 김자인은 지난해만 해도 키 생각만 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키에 당당하다. "이젠 편하게 생각해요. 작으면 어때요. 남들보다 벽을 잘 타면 되죠." 여자 클라이밍계에서 유명인사지만 일상에서는 영낙없는 여고생이다.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다니고 맛집을 찾기도 한다. 그래도 친구들은 불만이 많다. 주말에 연습하느라 친구들 모임에 자주 빠지기 때문. 친구들한테 미안하지만 김자인은 암벽을 탈 때가 가장 즐겁다. 올 봄 한 달에 두번 정도 대회에 참가하는 강행군을 하지만 몸은 지쳐도 마음은 언제나 밝다. "대회에 자주 나가서 시간에 쫓기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너무 재밌어요." 재밌게 암벽을 타다 보니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도 벽을 타고 올라가고 싶어진단다. "벽에 구멍이 나있으면 손가락을 집어 넣어봐요.살짝 벽에 매달려보기도 하죠"라며 짓궂게 웃는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욕심이 많다. 스포츠클라이밍이 보편화된 유럽으로 진출하려는 꿈을 갖고 있다. 대학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전공해 운동을 그만두고서도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친구들한테 스파이더걸로 불린다는 김자인. "스파이더걸이 X게임에서 우승하는 것 꼭 지켜보세요"라며 말을 맺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기자 lkb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