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까지 뛰겠다" 골프 선수 생활 50년을 맞은 한국인 마스터스 출전 1호 한장상(65) 한국프로골프협회 고문의 골프에 대한 애착이 여전히 뜨겁다. 지난 1955년 4월2일 골프에 입문한 한 고문은 1972년 일본오픈에서 일본 골프의영웅이었던 점보 오자키와 접전 끝에 1타차 우승을 일궈낸 뒤 이듬해 `명장열전'인미국프로골프(PGA) 마스터스에 출전하는 기념비를 세운 한국 골프의 산 증인.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와 한국오픈을 각각 7차례 제패하는 등 국내대회에서 19승을 거두고 해외에서도 3승의 경력을 지닌 한 고문은 50년간 아시아서키트에서 한차례도 결장한 적이 없다. 주니어 육성에 전념하고 있는 한 고문은 아직 선수생활을 접을 생각이 없다. 그는 1일 기자 간담회에서 "오는 2007년 제50회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까지 출전하고 싶다"면서 또 "클럽을 놓기 전에 에이지 슈터를 해보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올해는 정규 투어 3개와 시니어대회 3개 정도 출전할 계획. 에이지 슈터는 근력과 체력이 달리는 노년의 골퍼가 나이만큼의 타수를 치는 것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어려운 일. 최근 라운드에서 한 고문은 3∼4오버파 수준의 스코어를 냈다. 한 고문은 "55세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이후로 체력과 근력이 저하되며거리가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면서 "그러나 50년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이를 보완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 고문의 드라이브샷 비거리는 220∼250야드.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야구에서 골프로 전환한 괴력의 장타자 오자키와대결했던 일본오픈과, 처음으로 출전한 마스터스를 꼽았다. 당시 필리핀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한 고문은 일본 골프계에서 출전 제의를 받아 골프백을 어깨에 메고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연습장을전전긍긍하다 일본오픈에서 극적인 우승을 일궈냈다. 일본 국영 NHK 방송이 우승 장면을 방영한 뒤 `조센진'에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며 후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는 미국 시카고공항에서 길을 잃어 마스터스 대회장으로 가는 오거스타행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애를 먹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오거스타내셔널골프장 16번홀(파3) 티샷이 해저드에 빠지면 더블보기를 하는 바람에 예선에서 탈락했던 아쉬움도 생생히 기억했다. 한 고문이 또 잊을 수 없는 추억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 육군본부에서 사병으로 근무했던 한 고문은 일등병 신분으로 5.16 군사 쿠데타당시 서슬이 퍼런 최고회의 의장, 즉 박 전대통령에게 골프를 가르쳤고 제대 후인 60년대 중반까지 태릉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함께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군대식의 절도있는 스윙을 했지만 퍼트는 약했다는 것. 박 전 대통령은 한 고문에게 "한 코치, 빠따(퍼트)는 힘들군"이라고 말한 뒤 부터는 그린 위에서는 퍼트를 끝까지 하지 않고 흔히 아마추어들이 말하는 'OK'를 받는 일이 잦았다고. 열악한 경제 여건으로 빌어먹다시피 하며 외국 투어 무대를 뛰고, 골프 장갑이없어 손의 굳은살을 물에 불려 면도칼로 깎아내며 클럽을 휘둘렀던 한 고문은 주니어 육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한 고문은 "주니어들에게는 골프장을 쉽게 접해 할 수 있도록 문을 개방하고 그린피도 대폭 할인해야 한다"면서 "아마추어들은 건강을 위해 코스를 걸어다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 고문은 아마추어시절 기록을 세워보기 위해 1960년도 어느날 하루동안 오전6시부터 오후 8시까지 112홀을 돌다가 113번째 홀 두번째샷을 하고는 날이 어두워그만둔 적 있다. 그는 한때 어려운 경제적인 여건과 168㎝의 단신인 체격 조건, 실력 향상의 어려움 등이 겹치자 중도에 포기할 생각으로 권투 글러브를 낀 적도 있었다. 1966년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누르고 세계권투협회(WTA) 주니어 미들급세계 챔피언 타이틀 획득한 고 김기수씨는 그의 절친한 체육관 친구였다. (서울=연합뉴스) 이동경기자 hopem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