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장터는 즐겁다. 사람이 있고 먹거리가 있고,인정이 있어서다. '아라리의 고장' 강원도 정선에서는 요즘도 5일장이 선다. 끝자리가 2와 7인 날이 장날이다. 봄이면 달래 냉이 두릅 같은 무공해 산나물이 지천이고,여름에는 황기백숙과 찰옥수수가 입맛을 돋우던 정선 5일장. 찬바람이 쌩쌩한 겨울장에는 무엇이 나올까. 장터 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띄는 게 약초와 나물들이다. 추어탕에 후추 대신 넣는 초피(재피)와 산초,산머루,백복령,오미자,참나무겨우살이,헛개나무,더덕,가시오가피,영지…. 그 중에서도 정선을 대표하는 약재는 역시 황기다. 황기는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는 다한증에 특효가 있다는 약재. 3년근 1묶음이 1만원,7년근 1묶음은 3만원으로 중국산과 달리 약효가 뛰어나다고 장터 사람들은 강조한다. 산채를 파는 노점에는 산에서 직접 뜯어 말린 고사리며 참나물,곰취,곤드레나물이 눈길을 잡는다. 좌판 옆 전골냄비에선 들기름을 두르고 시식용으로 볶아내는 산나물이 입맛을 돋운다. 정선장터는 크지 않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약재며 산나물이며 구경하다 보면 다리도 배도 출출해진다. 이럴 땐 장터 골목 안의 식당도 좋지만 노점의 먹거리판 정취도 놓치기 아쉽다. 장터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콧등치기국수. 멸치국물에 된장을 풀고 끓여낸 메밀칼국수다. 토종 메옥수수 가루로 만든 올챙이국수,메밀묵,배추전,메밀 전병,메밀부치기,민물고기 튀김,감자떡,산채음식,황기족발,황기칼국수 등 먹거리판에는 별미가 수두룩하다. 여기에다 옥수수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이면 기분 만점이다. 별미로 힘을 내고 다시 장터 구경에 나선다. 생선가게엔 동해에서 건져올린 양미리와 최근 들어 부쩍 많이 잡힌다는 도루묵이 눈에 띈다.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이고 나온 콩이나 메밀 등도 모처럼 보는 '진품'들이다. 농기구서부터 골동품까지 없는 게 없는 만물가게도 있다. 대장간에서 두드려 만든 부엌칼과 낫 도끼 괭이 맷돌은 물론 겨울철 방안에 불씨를 담아놓던 화로와 절구,무쇠가마솥,풍로 등 하나하나 짚어보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지경이다. 장터 한쪽에서 물푸레나무로 만든 주방기구를 파는 상인이 부르는 노랫가락이 장터의 오후햇살과 함께 퍼져나간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 여행수첩 ] 서울에서 정선으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 새말IC로 빠져 장평과 진부를 지나면 된다. 새말에서 안흥∼방림∼평창∼정선으로 이어지는 국도 노선을 잡아도 된다. 4월부터 11월 말까지 운행하던 '정선5일장 관광열차'는 겨울이라 운행이 중단된 상태. 장터구경은 1∼2시간이면 끝나지만 요모조모 뜯어보며 시골정취를 느끼려면 좀 느긋하게 보는 게 낫다. 정선 일대의 명소와 동해·삼척으로 넘어가 겨울바다를 감상하는 것도 좋겠다. 정선군 동면 일대의 화암약수,거북바위,용마소,화표주,소금강,몰운대,광대곡 등 '화암8경'은 놓치기 아까운 절경. 민둥산 조양산 가리왕산 등의 등산코스도 있다. 장터 안팎에 민속촌식당(033-563-0789),석곡집(033-562-8322),정선황기막국수(033-563-0563) 등 별미집이 많다. 정선=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