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와 기아의 경기가 열린 16일 잠실경기장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그라운드에 서는 흔치 않은 장면이 펼쳐졌다. 물론 두 명 모두가 선수인 것은 아니고 한 명은 베테랑 심판인 김호인(49)씨고다른 한 명은 그의 장남인 2년차 선수 김용우(24.LG). 프로야구 최초의 심판-선수 부자인 이들이 한 경기에 함께 나선 것은 지난 시즌김용우가 경기 막판 잠깐 대수비로 나서 만난 것이 유일해 이번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김호인 심판은 3루심에 배정돼 보통의 상황에서라면 아들과 마주칠 일이 없을듯 했지만 운명의 신은 얄궂게도 부자의 첫 만남에서부터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1회말 LG 공격에서 2번 타자로 왼쪽 타석에 선 김용우는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끝에 상대 투수 이대진의 9구째에 왼쪽 무릎을 맞았지만 동시에 배트도 살짝 돌았다. 배트가 체크 스윙으로 인정되면 삼진이고 아니라면 몸맞는 공으로 출루하는 애매한 상황에서 강광회 주심은 좌타자의 스윙을 보다 잘 볼 수 있는 3루심에게 판정을 맡겼다. 평범한 경우라면 아들의 플레이에 끼어들 일이 없는 김호인 심판의 손에 졸지에아들의 `생사'가 달리게 된 것. 그렇지만 김호인 심판은 지체없이 팔을 들어 아들의 삼진 아웃을 선언했다. 어떻게보면 지난해 입단 뒤 줄곧 2군을 전전하다 전날 삼성과의 더블헤더에서프로 첫 홈런을 날리는 등 이제 막 피어나는 아들의 앞길을 막은 꼴이 됐다. 아버지의 존재가 부담이 됐는지 김용우는 두번째 타석에서도 헛스윙 삼진으로물러났지만 4회 3번째 타석에서는 6-1로 앞선 2사 2루에서 보란듯이 승리에 쐐기를박는 시원한 적시타를 때려냈다. 김호인 심판은 경기 뒤 `선수'에 대해 말하는게 곤란한듯 "전혀 의식하지 않고평소와 다름없이 판정했다"고 말하면서도 "물론 아들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고 아들의 선전을 바라는 마음은 감추지 않았다. 반면 김용우는 잔뜩 긴장했었다고. "경기 전 식당에서 아버지와 마주쳤지만 말도 못걸었다"는 김용우는 "아버지의삼진 판정은 정확했기때문에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면서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었지만 아버지 앞에서 안타를 때려 기분이 좋고 앞으로는 더욱 당당해질 수 있을 것같다"고 말했다. 결국 아버지는 부정(父情)에 현혹되지 않고 공정(公正)을 지켰고 아들도 아버지의 판정에 서운해하지 않고 프로 무대에 잘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자랑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진기자 transi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