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를 품었다.' 새천년 처음 열린 월드컵의 주인공은 한국이었다. 일본과 공동개최했지만 세계의 이목은 한국으로 쏠렸다. 월드컵 4강, 폭발적인 응원, 깨끗한 매너 등에 대해 외국의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은 내부적으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국민이 하나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외부적으로는 한국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잠재된 힘을 세계에 과시했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많은 과제도 남겼다. 이번 월드컵에서 확인된 폭발적 에너지를 어떻게 승화시켜 나갈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경제 정치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월드컵의 성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실행계획(action program)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월드컵이 세계를 놀라게 한 깜짝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렛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 '캔 두(can do)' 정신의 확산 =월드컵 4강신화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월드컵 전까지 한국은 축구변방이었다. 월드컵 개막직전에 열린 영국과의 평가전에서 경기후 영국선수들은 한국대표팀과 유니폼 교환을 거부했다. 축구 2류국가인 한국선수들과 유니폼을 바꿔 입는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는 듯이 보였다. 그만큼 괄시받던 한국축구가 세계 4강의 반열에 당당히 올랐다. 이를 통해 한국민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사실 준결승진출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첫승을 거뒀을 때 할만큼 해냈다는 말도 돌았다. 그러나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우승후보를 차례로 꺾고 불패행진을 이어갈 때 전국민은 흥분했다. 그 흥분속에는 좋은 성적에 대한 기쁨도 있었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는 희열도 컸다. 서울 염창동에 사는 임훈구씨(37)는 "축구뿐 아니라 무엇이든지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다면 한국민은 축구 말고도 다른 분야에서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우리는 하나 =4천7백만명은 결국 하나였다. 또 국민 하나 하나는 모두가 4천7백만의 가슴을 안고 있었다. 온 국민은 붉은 옷을 입고 한반도 전역을 진달래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 함성속엔 지연이니, 학연이니 하는 어떤 갈등구조도 존재하지 못했다. 4천7백만명의 국민은 용광로처럼 타올랐고 그 속에선 너와 나의 경계가 녹아버렸다. 한국사회를 좀먹던 불신은 월드컵의 열기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대신 한국인임을 서로 자랑스러워하는 자부심이 생겼다. 그속에서 겨레는 한 마음이 됐다. 서울 목동에 사는 박상순씨(39)는 "이번 월드컵은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정말 유익했다"며 "아이들도 온국민이 함께 껴안고 기뻐하던 감동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세계가 놀랐다 =동방의 작은 나라인 한국은 정말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월드컵 4강에 올라서만은 아니다. 폭발적 에너지와 성숙한 시민의식에 세계의 찬사가 끊이질 않았다. 경기에 졌어도 상대방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나라 국기를 흔들어주는 성숙한 응원문화는 훌리건에 익숙한 유럽의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모두 붉은 옷과 태극기를 들고 함께 목이 터져라 외치는 '대∼한민국' '오- 필승코리아'는 세계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이와 함께 응원이 끝난 뒤 길을 깨끗이 치우고 가는 모습에서는 한국의 성숙함에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브랜드인 코리아의 상품가치가 수직상승하고 있다는 뜻이다. ◆ 포스트 월드컵을 시작할 때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둔 월드컵은 한국에 새로운 기회를 던져준 셈이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의 확산, 국민적 통합, 자신감의 증폭 등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촉발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우선 경제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개선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축구에 대한 호감이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수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각적인 실행계획이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또 자발적으로 분출한 국민적 에너지를 잠재우지 않고 한국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도록 사회 각 분야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만일 월드컵이 한달간의 깜짝 이벤트로 끝나버린다면 한국은 모처럼 찾아온 발전의 모멘텀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조주현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