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와의 3-4위전에서 0-1로 뒤질때 프리킥 동점골을 터트린 이을용(27.부천SK)은 한국의 4강 진출에 큰 역할을 해온 대표팀의 숨은일꾼. 이을용은 전반 시작 11초만에 터키의 하칸 쉬퀴르에게 첫 골을 내주고 뒤져 있는 상황에서 8분 송종국이 상대 페널티지역 정면 오른쪽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왼발로 멋지게 감아 차 오른쪽 골그물을 출렁이며 동점을 만들었다. 이을용은 앞서 지난 1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미국전에서 안정환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고 4일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역시 황선홍의 첫 골을 도운 바 있다. 그러나 이을용은 이곳 대구에서 열린 미국전때 황선홍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실축하고 이후 미드필드에서도 잇따라 판단착오를 저지르는 등 두고두고 '역적'이 될 뻔한 아찔한 기억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한때 축구가 싫어 그라운드를 등졌다가 우여곡절끝에 다시 축구화를 신게 된 아픈 사연에다 청소년대표-올림픽대표 등 엘리트코스도 밟지 않은 잡초같은 인생. 이을용은 94년 강릉상고 졸업을 앞두고 축구 명문대에 진학하기로 돼있었으나 `실력 외적인' 요인이 작용하면서 대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강원도 산골짜기의 황지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강릉중, 강릉상고를 거치면서 오로지 축구가 좋아 내달렸던 이을용은 이 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축구에 회의를 품은 이을용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번째 좌절을 맛봐야 했다. 대학간판보다는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다시 축구에 매달렸으나 이번에는 비슷한 이유로 청소년대표팀에서조차 탈락했고 이 충격은 스무살 산골 청년을 그라운드를 떠나게 만들었다. 축구와 이별을 고한 이을용은 이곳 저곳을 정처없이 방황했다. 환락을 동경,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까지 하면서 종전까지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을용은 95년 한국철도 이현창 감독에 의해 다시 축구화를 신었다. 고교시절그의 기량을 높이 샀던 이 감독은 전지훈련차 강릉에 머물다 그의 소식을 접한 뒤이을용이 웨이터생활을 하던 제천까지 찾아가 설득했다. 감독의 끈질긴 설득에 한국철도(당시 철도청)소속으로 그라운드에 복귀했고 상무를 거쳐 97년 말 프로축구 신인드래프트에서 부천의 지명을 받았다. 97년 말에는 연상의 여인과 결혼, 안정을 되찾고 98년부터 부천 SK의 막강 미드필더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99년 3월에는 생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경기종료 직전 김도훈의 결승골로 세계 최강 브라질을 1-0으로 이긴 바로 그 경기였다. 176㎝, 69㎏으로 체격은 빼어난게 없지만 체력이 뛰어나고 넓은 시야에 패싱이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히딩크 사단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굳혔다. '라이벌' 이영표와의 왼쪽 미드필드 경쟁에서 밀려 선발라인업에서 제외될 위기에 놓였으나 이영표의 부상으로 `대타'로 출전해 '주전, 그 이상'이 됐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공격적인 플레이가 부족하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또 플레이중에 집중력이 산만해져 어이없는 패스범실이 종종 나오는 것을 지적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90분내내 줄기차게 뛰는 것을 바라는 히딩크 감독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선수. 지난 해 8월 네덜란드전지훈련 이후부터는 한 번도 대표팀에서 제외되지 않은것이 말해주듯 이을용은 히딩크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왔고 이번 대회 어시스트 2개와 함께 마지막 경기에서 골까지 터트린 것으로 그 신뢰에 보답했다. (대구=연합뉴스) meola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