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안타까운 탈락이다. 4강이라는 위치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넘치고 남는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태극전사들이 흘린 땀과 피가 안타까워서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세계를 품었다. 그리고 아쉬움만큼이나 큰 감동을 세계인에게 선사했다. 온 세상에 'Korea'는 선명히 각인됐다. 월드컵 4강의 신기원, 4천7백만 국민의 열광적 응원.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코리아의 에너지'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다. 더불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던 좌절과 자포자기의 기운은 깨끗이 사라졌다. 대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분명한 자신감이 그 자리에 싹텄다. 그리고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는 지렛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월드컵을 통해 15조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 하나된 국민, 감탄한 세계 =태극전사들의 선전만큼이나 세계인을 놀라게 한 것은 열광적인 응원문화다. 수백만명이 길거리에 모여 함께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모습은 그것 자체가 감동의 드라마였다. 생면부지의 사람끼리,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서로 부둥켜 안고 응원하는 모습은 우리가 하나임을 확인시켜줬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익숙해지기 시작한 체념과 좌절이라는 단어 대신에 희망과 도전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지연, 학연 등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구조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코 병행할 수 없을 것 같은 '열정과 질서'의 응원 패턴은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CNN 등 해외 언론은 수백만명의 사람이 모여 정열적인 응원을 하고 난 뒤 거리를 깨끗이 치우는 모습을 보도하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극찬했다. ◆ 세계의 중심에 선 한국 =한.일 월드컵을 통해 한국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섰다. 월드컵 본선 4강의 위업은 한국 축구를 세계의 변방에서 한 가운데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이상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는 점이다. 축구는 전 세계인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다. 유럽이나 남미와 같은 곳에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월드컵은 그래서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되는 것이다. 'Korea'는 이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결승행이 좌절됐다는 아쉬움으로 월드컵 열기가 급격히 식어버린다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열리는 3.4위전뿐 아니라 월드컵이 완전히 패막될 때까지 세계의 축제를 개최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경제 월드컵은 이제 시작 =이번 월드컵이 국내 경제에 가져다 줄 효과는 약 15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한국 경제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88 올림픽은 한국에서 개발도상국이라는 수식어를 지우고 한국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현대경제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번 월드컵 이후 한국이 동아시아의 허브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관광산업 등이 활성화되고, 한국 상품에 대한 친밀도가 부쩍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적극 활용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서둘러 만들어야 할 때다. 이 모든 것들은 월드컵 폐막 때까지 우리 국민들이 개최국 국민으로서 최선을 다할 때 가능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조주현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