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운재였다.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는 `야신상' 후보로 꼽혀온 이운재가 한국 축구의 신화를 창출했다. 22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이운재는 비단 살얼음같은 승부차기에서 결정적인 선방으로 팀의 신승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120분간 줄기차게 밀어붙인 상대 공격에도 흔들림없이 골문을 지켜냈다. 거스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안정된 플레이를 인정받아 김병지를 제치고 주전 수문장을 굳힌 이운재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승부차기. 네번째 키커 호아퀸이 볼을 향해 두 세발짝 전진하다 잠깐 멈칫했다. 이운재가 미리 움직일 것으로 생각하고 이운재의 반대쪽으로 차겠다는 의도였던 것. 그러나 호아퀸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이운재는 방향을 미리 잡지 않고 있다가 다소 위력이 떨어진 공을 왼쪽으로 다이빙하면서 막아 냈다. 어떤 상황에서도 떨지 않는 담력과 순간적인 머리싸움에서 이겨 한국을 4강에 올려놓는 순간이었다. 연장전을 포함한 120분을 통해서도 이운재는 야신상 후보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전반 26분 골문 모서리를 향해 들어가는 모리엔테스의 헤딩슛을 가볍게 잡아냈고 후반 14분 발레론의 오른발슛도 잡아내는 등 스페인 함대의 그칠 줄 모르는 공세를 온 몸으로 막아냈다. 94년월드컵에도 출전, 독일전 후반에 투입됐던 이운재에게 이번 월드컵은 한국축구 역사상 최고 골키퍼로 자리매김하게 해 준 대회로 남을 전망이다. 이운재는 잘 나가다 한 때 선수생활을 접어야 할 위기에 빠졌지만 강한 의지로 다시 글러브를 낀 투혼의 소유자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94년 월드컵에도 출전하는 등 엘리트코스를 밟았고 96년 프로축구 수원 삼성에 입단, 창창한 앞날을 예고했으나 그 해 간염이라는 벼락같은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이운재는 선수생활과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힘든 나날이 계속됐고 골문은 청주상고 대선배인 박철우에게 내 주는 날이 많았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기약없는 치료를 끈기있게 참아냈고 2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완전한 몸으로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2년여의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이운재는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도 김병지에게내 줘야 했고 이로 인해 98년 월드컵에는 아예 출전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좌절할 줄 모르는 이운재는 특유의 성실한 훈련으로 차근차근 기량을 회복해 나갔고 지난해 1월 부임한 거스 히딩크감독으로부터 인정받았고 이번 대회들어 한국 골문에 철옹성을 쌓고 고비마다 팀을 구해내는 수호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su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