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는 72년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8강이 겨루는 준준결승에 5개 대륙 국가가 고루 진출하는 신기원을 이뤘다. 유럽과 남미 일색이던 8강 잔치에 아시아(한국), 북중미(미국), 아프리카(세네갈)가 진출해 진정한 '월드컵'이 된 것이다. FIFA를 구성하는 6개 대륙연맹 가운데 본선 출전국을 배출하지 못한 오세아니아대륙연맹만 빼고 8강에 초청장이 빠짐없이 돌아간 셈이다. 월드컵은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동안 철저하게 유럽과 남미 중심이었다. 유럽과 남미 국가들만 모여서 치른 1930년 제1회 대회는 말할 것도 없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70여년 동안 '변방'의 설움을 톡톡히 당해왔다. 축구 실력도 낮았지만 월드컵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유럽인과 남미인들의손아귀에 놀아났기 때문. 1938년 프랑스대회 때 아시아에 처음으로 배당된 출전권은 네덜란드형 동인도제도(현재 인도네시아)에 돌아갔고 1950년 브라질대회 때 아시아 출전국 인도는 축구화도 없이 출전하려다 FIFA의 제지를 받자 아예 참가를 포기하기도 했다. 대륙별 본선 출전국 안배가 나름대로 정착된 것은 54년 스위스대회였지만 아시아 및 아프리카 푸대접은 여전했다. 본선 출전국 16개국 가운데 14개국을 유럽(10개국), 남미(4개국)에 배정하고 아시아는 북중미와 함께 1개국만 출전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홀대는 더욱 심해 아시아 또는 오세아니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야만 본선에 나올 수 있었다. 아프리카는 66년 잉글랜드대회 때 예선을 아예 거부했고 결국 70년 멕시코대회때부터 본선 출전권을 따로 1장 받았다. 하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주변국가에 대한 벽은 본선에서도 높았다. 북한이 66년 조별리그를 통과 8강에 올랐을 뿐 아시아와 아프리카에게는 본선의문턱조차 쉽지 않았다. 82년 스페인대회부터 본선 출전국이 24개로 늘어나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각각 1장의 출전권이 더 주어지면서 '변방 축구'는 비로소 세계 축구의 중심부 진입을서서히 엿보기 시작했다. 86년 멕시코 대회에 모로코가 16강에 올라 가능성을 확인했고 90년 이탈리아대회 본선에 처녀 출전한 카메룬이 16강에 이어 8강까지 내달리자 월드컵은 비로소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눈을 돌렸다. 아프리카는 이어 94년 미국 대회와 98년 프랑스대회에 나이지리아가 연속 16강에 오르더니 이번 대회에서 또다시 세네갈의 8강 진입으로 유럽, 남미에 대한 '대항마'로서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 아프리카에 비해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아시아도 한국의 8강 달성으로 이제 '촌티'를 벗어날 결정적 계기를 잡았다. 이번 대회 8강에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당당히 자리잡음에 따라 한때 잠잠해질듯한 본선 출전권 확대 요구가 다시 힘을 받을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의 참담한 본선 성적 때문에 입을 닫았던 아시아가 일본의 16강과 한국의 8강으로 4.5장인 본선 티켓을 5장으로 늘리자는 주장을 다시 펼수 있게 됐다. 유럽의 본선 진출티켓을 줄여 아프리카에 더 많은 출전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역시 제법 설득력을 갖게 됐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이 한국과 세네갈의 선전을 더욱 절실히 바라는 까닭이다.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반=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