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벌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4천700만 국민이 한곳에 모은 염원이 기적을 일으켰다. 전국 각지에 모인 400여만명의 붉은 물결이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기적을 만들어냈다. 환호와 감격의 눈물이 온 국토를 울리고 적셨다. 한국이 월드컵 8강에 오른 것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2002한일월드컵대회 16강전에서 통산 4번째 우승에 도전한 강호 이탈리아에 극적인2-1 역전승을 거둬 8강에 진출했다. 태극전사들의 투혼이 이끌어낸 승리였다. 한국은 0-1로 끌려가다 패전을 눈앞에 둔 후반 43분 설기현의 동점골로 기사회생한 뒤 연장후반 12분 안정환의 골든골로 이탈리아를 제쳤다. 설기현의 동점골이 터지자 대전월드컵경기장은 마치 한국이 승리한 듯 요동쳤고'대~한민국'이라는 네박자 구호와 '오~ 필승, 코리아' 합창이 울려퍼졌다. 이어 안정환이 드라마같은 승부를 마무리짓는 골든골을 이탈리아 골대안으로 받아 넣자 전국은 지축을 흔드는 함성 속에 파묻혔다. 포르투갈을 꺾은 한국은 이날 승리로 이번 대회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유럽 강호 2개팀을 탈락시키는 '저승사자'로 떠올랐다. 36년전 16개국이 참가한 66년 잉글랜드대회에서 북한이 역시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8강에 오른 것을 외관상 재현한 것이지만 한국의 승리는 많은 세월을 뛰어넘은 데다 짜릿한 역전극이었기에 더욱 뜻깊었다. 더구나 한국은 이날 승리는 '변방'으로 홀대받던 아시아 축구의 설움까리 날려버린 쾌거였다. 그러나 한국과 함께 동반 8강 진출을 노리던 일본은 미야기에서 열린 터키와의 수중전에서 0-1로 져 분루를 삼켰다. 이로써 이번 대회 우승 각축은 한국―스페인, 독일―미국, 잉글랜드-브라질, 세네갈―터키의 대결로 좁혀졌다. 한국은 오는 22일 오후 3시30분 광주에서 또 하나의 우승후보 스페인과 4강행을 다툰다. 한국은 전반 4분 얻은 페널티킥 득점 기회에서 안정환의 오른발 슛이 상대 GK잔루이지 부폰에 막혀 출발이 불길했다. 거칠게 몰아 붙이는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위축된 한국은 결국 전반 18분 토티의 코너킥에 이은 비에리의 헤딩슛으로 선제골을 빼앗기고 말았다. 수비수 홍명보, 김태영, 김남일을 빼고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 등 공격수를 투입한 히딩크 감독의 초강수에도 시간은 흘러 그대로 무릎을 꿇는 듯 했다. 그러나 후반 43분 설기현이 상대 수비 파누치의 몸에 맞고 흐르는 공을 왼발로 강하게 차넣어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한국은 연장 전반 상대 공격의 핵인 토티가 시뮬레이션으로 쫓겨나면서 승기를 잡았다. 연장 후반 12분. 이영표가 왼쪽에서 띄워준 볼을 비호처럼 달려든 안정환이 옆머리로 받아 넣어 거함 이탈리아를 눕혔다. 이에 앞서 일본은 전반 12분 터키의 위미트 다발라에게 헤딩슛 결승골을 내준뒤 끝까지 이를 만회하지 못했다. 터키는 48년만에 월드컵 본선 출전에 이어 16강과 8강 고지를 질주했다. 터키는 22일 오후 8시30분 오사카에서 ‘검은 돌풍’ 세네갈과 4강 티켓을 놓고 격돌한다. (대전.미야기=연합뉴스)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