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축구의 판도가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18일 한국과 터키가 각각 이탈리아와 일본을 제압하며 2라운드를 통과,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 8강이 모두 가려졌다. 지난 15일부터 4일간 펼쳐진 16강전은 '돌풍'과 '이변'으로 점철된 조별리그보다 더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뛰고 있는 축구의 본고장 유럽이 조별리그에서 줄줄이 쓴 맛을 본데 이어 2라운드에서도 맥없이 나가 떨어진 것. 8강 가운데 유럽국가는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그리고 터키 등 4개국으로 1~2자리만 남미 등에 양보했던 과거 양상에 비하면 뚜렷한 하향세. 조별리그에서 프랑스, 포르투갈 등 우승후보를 잃었던 유럽은 16강전에서도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아일랜드가 떨어져 생존율이 뚝 떨어졌다. 특히 강력한 우승후보라던 이탈리아와 '죽음의 조'에 탈출한 스웨덴은 각각 한국과 세네갈에 나가 떨어져 유럽 강국의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지난 90년 8강에는 아르헨티나(남미), 카메룬(아프리카)을 제외한 6개국이 유럽국가였고 94년에는 브라질(남미)을 뺀 7개국, 98년에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만 6개유럽국가 틈바구니에서 싸웠다. 동유럽의 몰락으로 조별리그부터 유럽의 힘이 빠졌다지만 8강 가운데 절반만 살아남았다는 것은 유럽의 쇠퇴를 웅변을 대변했다. 이같은 유럽세의 쇠퇴는 상대적인 '변방 국가'의 약진으로 설명된다. 한국의 8강 진입은 이제 유럽과 남미가 분할하던 세계 축구에 아시아의 몫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더구나 한국은 지금까지 아시아 축구가 유럽에 비해 힘과 체력에서 절대 열세라는 '상식'을 비웃듯 포르투갈에 이어 이탈리아를 격파, 이번 대회 최대의 이변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는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와 함께 세계 3대프로축구 리그인 세리에A를 운영하고 있는 세계 축구의 심장부. 공동 개최국 일본도 터키에 아깝게 패퇴했지만 유럽 축구에 절대 밀리지 않는힘과 스피드를 과시, '아시아의 힘'을 떨쳤다. 90년 이탈리아대회 때 카메룬이 8강에 올라 가능성을 확인한 아프리카 축구는이번에도 세네갈이 '검은 돌풍'을 재현했다. 16강 진출도 이변으로 여겨졌던 세네갈은 2라운드에서 유력한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격파한 스웨덴을 꺾어 이번 대회 최대의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의 8강 진입도 '변방의 승리' 가운데 하나로 꼽힐만하다. 세계 스포츠를 주름잡고 있지만 유독 축구에서는 후진국 취급을 받던 미국은 자국에서 개최된 94년 대회에서도 16강에 머물렀지만 이번에는 당당히 8강까지 치고올라가 강호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비록 유럽팀이라고는 하나 '본류'로 대접받지 못하던 터키의 8강 진출 역시 예사롭지 않다. 98년 대회에서 2개팀이 8강을 차지했던 남미도 브라질만 외롭게 남아 퇴조의 조짐을 보였다. 다만 유럽 대표 독일, 스페인, 잉글랜드와 브라질은 우승후보다운 전력을 16강전에서 유감없이 보여줘 세계 축구의 정상은 당분간 유럽과 남미의 각축장임을 분명히 했다. 16강전에서 보인 '변방의 힘'이 8강전에서도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지 관심이아닐 수 없다.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반=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