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의 `맹주' 멕시코와 `신흥강호' 미국의 자존심 대결은 브루스 어리나감독의 용병술이 빛난 한 판이었다. 어리나 감독은 부상에다 출장정지까지 겹친 난국을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작전과예상외의 선수기용으로 멋지게 돌파, 8강에 오르는 이변의 연출자가 됐다. 이날 경기는 주전 수비수 2명이 빠진 미국이 다소 열세일 것으로 예상돼 미국은초반 선취골을 넣은 뒤 잠그는 게 효율적인 작전으로 여겨졌다. 조별리그를 일본에서 치른 멕시코가 일본과 다소 다른 한국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피로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막상 그라운드에 양 팀 진용이 갖춰지고 휘슬이 울린 뒤에 전개된 경기진행 반대였다. 미국은 변함없이 4-4-2포메이션에 따라 수비라인에 4명이 일자로 늘어섰으나 미드필더 4명도 수비라인과 별로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수비에 치중했고 공격은 역습에 의존했다. 선수들의 기용과 포지션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멕시코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조별리그에서 고작 9분밖에 뛰지 않은 조시 울프를 클린트 매시스대신 기용, 브라이언 맥브라이드와 함께 최전방 투톱을 형성하게 했고 주전 플레이메이커 클로디오 레이나를 오른쪽 측면공격수로 돌렸다. 플레이메이킹은 스피드를 앞세운 측면돌파가 장기인 랜던 도노번에게 맡겼다. 왼쪽 측면공격수인 다마커스 비즐리마저 결장, 마치 미국은 양 날개를 다 떼어버리고 간신히 떠 있는 새를 연상시켰다. 예상외의 포진에 멕시코는 일순 당황했으나 의외로 쉽게 공격의 주도권을 쥐게되자 여우같은 어리나감독의 `꾀'는 까맞게 잊어버렸다. 전반 선취골과 후반 결승골은 모두 멕시코 선수들의 방심에서 나왔다.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밀어 붙이고 있다 보니 상대의 역습을 고려하지 못했고 도너번, 비즐리보다 더 뛰어난 측면돌파선수는 없을 것이라는 지레짐작도 한 몫 거든꼴이었다. (전주=연합뉴스) su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