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쇼트트랙에서 1.2위를 휩쓴 뒤 외신 기자들은 금메달리스트 고기현(목일중)보다도 전명규 감독에게 몰렸다. 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부터 한국 대표팀을 이끌며 통산 10번째 금메달을 일궈낸 명장에게서 승리의 비결을 듣기 위해서다. 하지만 쇼트트랙은 작전이 생명인지라 전 감독은 외신 기자들에게 "선수가 잘해서 이겼다"라고만 말할 뿐 좀처럼 작전 내용을 털어놓지 않았다. 이번 승리도 중국을 겨냥한 전 감독의 치밀한 작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 감독이 올림픽을 대비해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에서 집중적으로 연습시킨 것은 '추월당하지 않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주로 다른 나라 선수 뒤를 따라가다 마지막에 역전하는 것으로 재미를 보던 한국 대표팀의 작전에 일대 변화가 생긴 것. 한국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경험이 적어 노련한 중국의 양양A와 양양S로부터 추월 기회를 잡지 못할 뿐더러, 섣불리 추월하려 하다가는 오히려 실격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두 선수가 치고나간 뒤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체력을 조절하고 중국 선수의 추월을 막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 이 작전은 그대로 먹혀들어가 이날 경기에서는 시작과 동시에 고기현이 선두로 나섰고, 5바퀴를 남겨놓고는 최은경과 선두를 바꿔가며 상대 선수를 효과적으로 견제해갔다. 이 와중에 양양S가 추월을 시도하다 넘어졌고 예브게니아 라다노바(불가리아)와 양양A도 따라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또 하나의 작전은 정보 통제. 캘거리로 전지 훈련간다고 중국에 역정보까지 흘리며 전력 노출에 힘썼던 한국은 솔트레이크시티에 와서도 전력을 다해 훈련하지 않으며 중국을 방심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양양A가 준결승전에서 최은경이 무서운 뒷심으로 갑자기 추월하자 당황하게 됐고 "뭔가 이상하다"고 알아챈 결승전에서는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당한것이다. 출국후 한 번도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해진 전 감독은 "이번처럼 긴장되고 부담이 컸던 대회는 없었다"며 "이날 승리가 자신감으로 이어져 앞으로도 계속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솔트레이크시티=연합뉴스) 이정진기자 transi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