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5년 역사를 자랑하는 두산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창업주인 고 박승직 회장에 이어 고 박두병 회장-박용곤 명예회장-박정원 사장까지 국내 최초로 4세 경영체제에 들어간 국내 근대기업의 산 역사라 할 수 있다. 박 명예회장의 부친인 고 박두병 회장은 국내 골프장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서울CC 이사장을 지냈고 한국골프협회(현 대한골프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을 정도로 한국골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박 명예회장은 한국전쟁 때 군복무를 마치고 53년 유학을 떠났다. 그는 58년 워싱턴대(University of Washington)를 졸업할 때쯤 학교 골프장에서 골프에 입문했다. 골프코치를 통해 기초를 다지고 골프관련 서적도 탐독하면서 골프를 '제대로' 배웠다. 59년 귀국한 뒤 부친이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CC에서 골프를 쳤다. 당시에는 골프 선배들이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룰과 에티켓을 지키지 않으면 혼이 났다. 박 명예회장이 골프규칙을 잘 지켜 '매너 박'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렇게 보수적인 골프교육을 받은 데서 기인한다. 박 명예회장과 룰에 관한 한 에피소드.한 번은 그룹 계열사 사장단과 단체로 라운드를 했다. 박 명예회장이 앞서 가다가 다른 홀에서 볼을 치는 한 사장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런데 그 사장이 러프에서 볼을 살짝 꺼내 놓고 치는 것을 발견했다. 박 명예회장은 라운드를 마친 후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그 사장에게 "골프는 그런 식으로 치는 게 아니다"며 면박을 줬다. 원래 박 명예회장은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회의에서도 말을 듣는 입장이지 먼저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누군가 잘못을 해도 이를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말을 한다. 그래서 회사 임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꼽힐 정도로 그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룰을 지키지 않았다고 공개석상에서 나무란 것은 그가 골프에서 룰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는 아무리 중요한 사람일지라도 스코어를 속이거나 룰을 안지키면 그 사람과는 두 번 다시 골프를 하지 않았다. 박 명예회장은 "최근 들어 골프 인구가 늘고 기량도 향상됐으나 매너는 예전보다 더 형편없다"고 개탄한다. 클럽하우스 식당이나 목욕탕에서 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목욕타월이나 수건을 아무렇게나 팽개치는 사람,벙커샷을 한 뒤 벙커 정리도 안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든다. 박 명예회장은 골프를 가르치는 레슨코치들이 기술만 가르칠 줄 알았지 룰이나 매너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자주 지적한다. 박 명예회장은 골프복장도 단정하도록 신경을 썼다. 비싼 옷은 아니지만 컬러를 맞춰 입었다. 상대방이 보기 좋아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박 명예회장의 이러한 골프관은 두산의 사업관과도 직결된다. 경영에서도 항상 정도를 지키고 룰을 중요시한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넌다'는 두산의 풍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