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투어 생활 11년차의 베테랑 데이비드 톰스(34.미국)에게 메이저대회 첫 우승컵을 안겨준 것은 최종 4라운드 마지막홀에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용기'였다. '메이저 무관의 제왕' 필 미켈슨(미국)과 매치플레이를 방불케 하는 숨가쁜 접전 끝에 1타차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채 18번홀을 맞은 톰스는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려 러프와 페어웨이 경계에 공이 떨어졌다. 18번홀은 파4홀이지만 웬만한 파5홀과 엇비슷한 490야드의 엄청난 길이에다 그린이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번 대회에서 수많은 선수들이 이곳에서 눈물을 삼킨 악명높은 승부홀. 신중하게 볼이 놓인 곳을 살피던 톰스가 아이언을 빼들고 친 세컨드샷은 놀랍게도 그린이 아닌 연못 바로 앞 페어웨이에 떨어졌다. 톰스는 그린을 직접 노리지 않고 3온 작전을 편 것이다. 210야드나 남은 거리에서 불안한 라이에서 섣불리 그린을 겨냥하다 연못에 공이빠질 경우 다 잡았던 우승컵을 놓칠 수 있지만 3온 1퍼트로 파세이브에 성공하면 우승은 떼어논 당상이고 보기를 범한다 해도 최소한 연장전은 갈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미켈슨이 만만치 않은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낼 가능성은 낮은데다 파세이브를 해낸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톰스의 '레이업'은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수많은 갤러리 앞에서 언뜻 '비겁한 짓'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역전 우승을 노린 미켈슨은 그린을 향해 아이언샷을 날렸고 공은 홀에서 9m 가량 떨어진 곳에 내려 앉아 정상급 선수라면 충분히 버디를 성공시킬 수 있는 상황. 그러나 톰스가 90야드를 남기고 로브 웨지로 친 3번째 샷은 핀에서 3m 가량 떨어져 파세이브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미켈슨이 버디를 낚고 톰스가 파세이브에 실패하면 우승컵의 주인공이 뒤바뀌게 되고 미켈슨이 설사 버디를 못해도 톰스의 파퍼트는 들어갈 확률보다 실패할 공산이 큰 거리. 그러나 미켈슨의 버디 퍼트가 홀 바로 앞에서 멈춰선 뒤 숨을 고른 톰스가 친파 퍼트는 거짓말처럼 홀에 빨려 들어갔다. 극적인 파세이브로 1타차 우승을 지켜낸 톰스는 18홀 내내 시종 공격적인 플레이로 압박해오는 미켈슨의 기세에 눌려 그늘을 드리웠던 얼굴 표정을 그제사 활짝폈다. 톰스의 뇌리 속에는 지난 99년 브리티시오픈 최종일 장 방 데 발드(프랑스)가레이업 대신 그린을 직접 공략하다 트리플보기를 저질러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놓친 '교훈'이 살아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해 US오픈에서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1타차 선두였던 페인 스튜어트가 레이업을 펼쳐 세번만에 온그린한 뒤 4.5m 파퍼트를 집어넣어 극적인 우승을 챙겼던 기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