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대통령은 태릉컨트리클럽에서 골프를 하고 나면 귀빈실로 가서 동반자들과 담소를 나눴다.

지금 기억나는 장면은 군출신이었던 당시 태릉CC 이상국 전무이사에게 "이장군,내가 힘이 되어줄게 없소?"라고 물었다.

박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다.

나한테도 "한코치,뭐 필요한 거 없어"라고 물어서 "저는 됐습니다. 골프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라운드가 끝나면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뉴코리아CC에서도 라운드 후 귀빈실에서 큰 대접에 막걸리를 따라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 마신 잔을 다른 사람에게 주며 ''한 잔 받으시오''하면서 잔을 돌렸다.

나는 박 대통령이 상당히 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친밀한 성격을 가졌다고 기억한다.

라운드할 때도 보통 앞 홀을 비워두고 시작하지만 밀려서 앞 팀을 만나게 되면 악수도 하고 "운동 열심히 하라"며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아부하려는 정치인들이 박 대통령 주위에 맴도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심지어 자신은 볼을 잘 치지도 못하면서 환심을 사려고 박 대통령에게 "이렇게 치십시오,저렇게 치십시오"하며 레슨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번은 박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머리를 안들지?"하면서 ''헤드 업'' 문제로 고민을 하자 여기 저기서 말도 안되는 레슨을 박 대통령에게 하려고 했다.

그러면 박 대통령은 "한 코치가 잘 가르치고 있으니 당신들은 됐소"라고 물리쳤다.

박 대통령은 내가 볼을 치는 것을 보면 "아! 시원하게 날아가는구만"하면서 찬사를 했다.

박 대통령이 라운드할 때 전화가 자주 왔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와 국가의 중대사에 관한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

이후 나는 동남아와 일본 등 외국 골프대회에 자주 참가하게 되면서 박 대통령을 만날 수가 없었다.

내가 박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72년이었다.

그해 나는 일본오픈에서 우승을 하고 귀국해 남서울CC 헤드프로로 있었다.

박 대통령은 고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과 남서울CC로 골프하러 왔는데 박종규 경호실장이 인사를 하라며 나를 불렀다.

박 대통령은 나를 만나자마자 악수하면서 "국위를 선양하는 훌륭한 일을 했구만.일본오픈 우승을 축하하네.한 코치는 정말 좋은 선수야.앞으로 계속 열심히 해"라며 격려를 해줬다.

박 대통령은 이어 "아직은 골프가 일반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훈장을 주지 못해 아쉽구만.앞으로도 국위 선양을 위해 더욱 노력해 줘"라고 말했다.

그게 박 대통령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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