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여자가 골프하는 게 가당치도 않았지요.

친구들 중에는 골프하는 이가 없어요.

먼저 가버린 친구도 많고….

이렇게 젊은 사람들하고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복인지 몰라요"

약 한 달 전 70대 노부인과 라운드를 할 수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 분이 첫 번째 티샷을 하셨는데 거리가 얼마나 조금 나갔는지 모른다.

그에 비해 내 드라이버샷은 50∼60야드씩은 더 나가 있었다.

드라이버샷도,세컨드샷도 거리 차이가 많이 났다.

젊은 사람이 괜히 힘자랑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상황은 그린 주변으로 오면 바뀌었다.

쇼트게임을 할 때도 힘이 빠지지 않아 번번이 미스샷을 내는 나에 비해 그 분의 샷은 얼마나 정교하게 익어 있던지….

벙커에서도,러프에서도 그린으로 살짝살짝 걷어내셨고,두꺼운 안경 사이로 눈을 반짝이며 컵 속에 볼을 댕그랑 떨구셨다.

힘만 앞세운 ''변강쇠 골프''는 미스샷 없는 ''따박따박 골프''에 이길 방법이 없는가 보다.

나는 18홀 내내 그 부인의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70의 연세에도 골프를 할 수 있는 경제적·건강적 여건이 부러웠고,구력이 묻어나는 쇼트게임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더 존경스러운 모습은 따로 있었다.

3월 말인데도 눈발이 흩날리던 그 날.캐디 아가씨의 손을 잡아주며 "언니야,얼마나 춥노? 언니는 고생 많이 하니까 시집도 좋은 데로 갔으면 싶은데….고된 일을 하는데도 함박꽃처럼 이쁘데이" 하시던 말씀.

그리고 티잉그라운드 한쪽에서 나무와 대화하던 모습.

노부인은 마악 꽃이 피려다가 얼어붙은 꽃봉오리에 입김을 불어 넣어주고 계셨다.

"꽃아,눈이 와서 어쩌노? 얼마나 추울꼬?" 하시며 그 가시 많은 나뭇가지에 입맞춤을 하던 모습이 마음에 와서 박혔다.

사실 내가 40년 후에 간직하고 싶은 모습은 구력이 묻어나는 쇼트게임보다 코스의 나뭇가지 하나에도 입맞춤하시던 그 모습이다.

골프장에서의 세월,구력은 스코어만으로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동반자의 미스샷,캐디의 굳은 손,얼어붙은 꽃 한송이에도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경지,진정한 ''구력''은 그 경지가 아닐까.

고영분 moon@golfsky.com 골프스카이닷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