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만에 보스턴 마라톤 정상에 오른 이봉주(31·삼성전자)의 쾌거는 작전과 자신감의 승리였다.

화창한 날씨 속에 펼쳐진 이날 레이스에서 이봉주는 초반부터 강력한 경쟁자인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게자헹 아베라(에티오피아)와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 엘리야 라가트(케냐) 등이 뒤로 처진 것을 확인하고 대체로 평탄한 30㎞ 지점까지 무리하지 않고 10여명의 선두그룹에 끼여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굴곡이 심한 30㎞ 지점에서 승부를 건다는 작전에 따라 이봉주는 서서히 속도를 내 ''심장파열 언덕''으로 불리는 32㎞ 지점에서부터 실피오 구에라(에콰도르)를 포함한 4명의 선수와 선두 경쟁을 벌여 나갔다.

이봉주의 진가는 이때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

이봉주는 난코스가 이어지는 이 지점부터 페이스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상대 선수들의 진을 빼기 시작했다.

37㎞ 지점.

이제는 승부를 걸 때가 왔다고 판단한 이봉주는 먼저 치고 나갔다.

그러나 99년 이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저력이 있는 구에라는 뒤처지지 않고 끈질기게 이봉주를 따라 붙었다.

하지만 구에라의 막판 체력은 여기까지였다.

겨울 훈련 기간에 미국 앨버커키로 고지대 훈련을 다녀오는 등 착실하게 준비,자신감에 차 있던 이봉주는 결승선을 불과 2㎞ 남겨 놓고 지난 2월 타계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라스트 스퍼트를 시작했다.

3파전이던 것이 독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막판 2위 그룹을 멀찌감치 따돌렸음을 확인한 이봉주는 여유 있게 1위로 질주해 골인하며 오른손을 높이 치켜 들었다.

2위는 이봉주보다 24초 뒤진 2시간10분7초의 구에라가 차지했고 그 뒤를 셀랑카(2시간10분29초)가 이었다.

이봉주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됐던 아베라와 라가트 등은 모두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