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작가 >

비가 오는 날 두 번의 라운드에서 너무도 다른 두 명의 캐디를 만났다.

"저 혼자만 입어서 죄송해요.이따 오후에 한 라운드를 더 돌아야 돼서요"라며 혼자 비옷을 꺼내 입는 것을 무척 미안하게 생각하던 캐디가 있었다.

그런가하면 지붕만한 우산을 혼자 쓰고 가면서 옆에 걸어가는 골퍼가 비맞은 생쥐꼴이건 말건 나몰라라 하는 캐디도 있었다.

누구나 다 전자같은 캐디를 원하지만 사실 퉁명스런 그 캐디도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초반에 좋았던 분위기가 살벌해진 것은 한 명의 볼이 그린을 훌쩍 넘어간 순간부터였다.

캐디가 적극 권한 클럽으로 치다가 발생한 미스샷이었다.

동반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8번아이언을 준거야"라며 짜증을 냈다.

그리고 안 맞는 채를 줬다는 동반자의 불평이 두세 홀 이어지자 그때부터 캐디 아가씨는 돌변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동반자가 그렇게 원하던 버디를 잡았는데도 캐디는 ''나이스 버디'' 한 번 외치지 않고 등을 돌린 채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이런 경우 최초의 원인 제공은 십중팔구 골퍼인 경우가 많다.

클럽을 잘못 건네주었다고,그린 라인을 잘못 읽어주었다고,빨리 칠 것을 권유했다고….

짜증내며 그 탓을 캐디에게 돌린다.

"당연히 캐디의 몫 아니냐.놀러 나온 우리가 캐디 눈치까지 봐야 하느냐"며 그들의 직업의식만을 강요하기도 한다.

얼마 전 캐디 없이 전동카트에만 의존해야 하는 골프장에 처음으로 가봤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고,능숙지 않으면 내심 짜증까지 내던 그들의 일-볼이 나아가는 방향을 봐주고,채를 제때 챙겨주고,잘 들어가도록 볼을 닦아 다시 놓아주는 일 등이 내게 얼마나 필요한 작업이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친 볼을 보지 못해 이산 저산 볼을 찾아 헤매야 했고,경사를 읽지 못해 그린을 빙빙 둘러봐야 했으며,채를 놓고 와 전 홀로 다시 허겁지겁 달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정신 없는 플레이,그보다 더 크게 느껴진 것은 적막함이었다.

네 시간반 동안 곁에서 함께 안타까워해주고 기뻐해주며 한없는 재잘거림으로 내 플레이에 관심을 가져주던 동반자 한 명이 빠진 듯한 느낌.

목이 마른 것을 귀신같이 알아내 얼음물을 따라주던 그들의 향긋함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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