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작가 >

드디어 나와 실력이 비슷한 동지 D를 만났다.

초보자라 방심하고 있었는데 나는 간신히 쓰리온 시키는 파4홀을 D는 종종 두 번만에 온그린시키며 나를 긴장시켰다.

두번째 D와의 플레이 날이 정해지자,나는 "구력은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D역시 내가 만만하게 보였는지 나를 앞지르겠다는 전투욕이 생긴듯 했다.

사무실에서 홀연히 사라져 몇시간 뒤 땀에 흥건히 젖어 나타나는가 하면 틈틈이 레슨 서적을 보며 연구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에 질세랴 나도 점심까지 거르며 틈만 나면 연습장으로 향했다.

드디어 D와의 두번째 플레이 날.

그날 아침까지 팔목이 시큰거리도록 연습을 해놓고서도 "연습하나도 안했다"고 엄살부터 부렸다.

일단 상대를 안심시킨 다음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같은 마음이었을 D,힘이 잔뜩 들어가 티샷을 하더니 토핑을 내고 말았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의 티샷이 이어졌다.

그러나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첫 번째 홀을 D와 나는 나란히 더블파를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다르다"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볼은 반대로만 갔다.

"이번홀에서는 꼭 버디를 잡고야 말겠어"라고 선언을 하면 버디는 없고 더블보기만 있을 뿐이었다.

D도 마찬가지였고 이런 마음은 서로를 무모하게 만들어갔다.

깍아지른 듯한 경사에서도 우드를 뽑아들었고,페어웨이 벙커에 빠져서도 우드를 들고 들어갔다.

그런 샷은 분명 또 다른 실수로 이어지곤 했다.

이번 브리티시 오픈에서 듀발도 무모한 핀 공략을 하다 결국 네번만에 벙커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던가.

듀발도 그러한데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우리가 그랬으니 그 결과는 더 참담할 수 밖에 없었다.

고참선배가 말했다.

"두사람 "뭔가 보여주겠다"는 마음인 것 같은데 그건 힘이 아니라,머리로 보여줘야지요. 그 벙커에서 우드를 잡을 게 아니라 짧은 아이언을 잡았어야 했어요. 마음은 우드로 핀공략을 하고 싶었겠지만 욕심과 반대로 가는 게 골프랍니다"

머리를 쓰지 않은 하룻 강아지들의 대결은 그렇게 힘자랑만 하다 끝이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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