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방송작가>

어제 머리올리는 후배 J와 라운드를 하였다.

쳤다 하면 헛스윙에,뛰다가 넘어지고,스윙을 못이겨 몸이 팽그르르 돌고...

마음같아서는 내가 대신 쳐주고 싶은 샷이 많았다.

1m를 채 못나가는 샷이 더해질수록 후배의 어깨는 점점 처졌다.

얼마나 마음이 상할까.

내가 머리 올리던 날,"저 너무 못치죠. 괜히 나와서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요"라는 내게 "무슨 말이예요. 우리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건 하나도 없어요. 다만 너무 실망해서 골프에 재미를 잃을까봐 그게 걱정이지"라고 말씀해 주시던 선배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나 역시 후배가 골프에 재미를 잃을까봐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후배,9홀이 지나자 골프가 재미없다고 생각이 됐나보다.

"이 뙤약볕 아래서 무슨 재미로 골프를 치는 거죠.힘들기만 하고,돈도 많이 들고...저는 별로 골프랑 친해질 것 같지 않아요. 관둘까봐요"

스스로 자책하며 애써 골프를 부정하고 있었다.

그런 후배에게 얼마전 들은 한 중년신사의 머리올리는 날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사업때문에 마흔 넘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골프였어요. 독학으로 두 세달을 하고 필드로 끌려갔지요. 사업상 경쟁관계인 사람들과의 라운드였는데 볼이 하나도 맞지 않았어요. 다행히 비가 와서 라운드도중 그만두나 싶었는데 이 친구들 계속하자는 거예요. 그러면서 전부 비옷을 챙겨입더군요. 물론 저는 처음이니 그런 장비가 있는 줄도 몰랐구요. 후반은 그야말로 골프를 하는건지 군사훈련하러 산에 왔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꼴에 옷들은 몸에 들어붙어 감기고 볼은 도대체 주인 속마음도 모르고 제멋대로이고...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 모릅니다. 나도 자존심이 무척 강한 놈인데 비가 다행히도 내 눈물을 감춰 주었죠.제 자신에 대해 이를 갈았습니다. 건방진 놈이라고 말입니다. 두번 다시 이런 수모는 겪지 않을거라고 비오는 하늘을 쳐다보며 맹세를 했죠.그로부터 두달뒤,저는 그들과 스크래치(scratch)를 제의했고 지금은 계속 그 수준에서 맴돌고 있답니다. 골프는 자극이 있어야 발전을 하는 것 같더군요"

"후배 J야,내리는 비에 눈물을 흘려보낸 분도 있단다. 그러니 포기 하지 말고 "자극"받으렴.너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잖니"

godoc100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