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변호사는 법조계에서 몇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급 골퍼다.

그런 그였기에 만나자마자 "어떻게 해야 골프를 잘 칠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천지가 개벽을 하려면 가랑비로는 안되고 소낙비가 내려야 합니다.

스윙이론에 구애받지 말고 수많은 연습볼을 때려야죠.

입문후 1년내 어느 수준에 오르지 못하면 대부분은 평생동안 "그저 그런" 골프를 하고 맙니다.

집중적으로 골프에 "몰입"하는 시기가 있어야 핸디캡을 뚝 낮출수 있습니다"

그의 골프지론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골프는 시기와 질투가 아주 심한 운동입니다.

라운드전날 다른 것을 하면 다음날 골프는 안되게 돼있습니다.

술 담배 노름 등산 테니스등 골프외의 것들을 절대 용인하지 않습니다".

그는 "조율되지 않은 건반을 두드려 화음을 이뤄내는게 인생"이라는 팡세의 말처럼 수많은 난관과 변수속에서 일정한 점수를 얻어내는 골프와 인생은 닮았다고 했다.

소변호사는 84년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경제적 부담이 돼 연습볼 1백20개를 얻어 한강 고수부지에서 혼자 연습을 하곤했다.

변호사로 개업해 경제적 여유가 좀 생겼을 때는 1주일에 두번쯤 관악CC에 가 맨앞팀으로 9홀정도를 혼자 플레이한뒤 출근하곤 했다.

그는 지금도 매일 1시간씩 연습장을 찾는다.

그의 골프는 "연습에서 시작해 연습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소변호사는 한라운드 버디 6개,18홀 모두 파,수없는 이글등 각종 진기록을 갖고 있다.

홀인원도 한번 해봤다.

그에게도 징크스가 있는데 티업할때 볼이 떨어지면 이상하게도 샷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소변호사는 "패밀리 골프"를 이상형으로 본다.

그렇지만 "아내에게 운전과 골프는 가르치지 말라"는 말을 철칙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가 골프를 배운후 스윙에 대한 조언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플레이도중 아내가 어떤 것이든 좋으니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해 들어주었다가 4홀쯤 지나서 결국 싸움이 나 플레이를 중단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고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와 골프인연을 통해 일에서 얻을수 없는 소중한 체험을 했다.

소변호사는 우연한 기회에 박씨와 라운드를 하면서 그동안 대마초 흡연으로 인해 각인된 박씨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게 됐다고 한다.

"필드에서 지켜보니 그렇게 착할 수가 없더군요".

이후 박씨가 또 다시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되자 소변호사는 자청해 무료로 사건을 맡았다.

골프를 통해 박씨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에 그는 백방으로 뛰었고 다시금 박씨에게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 한은구 기자 tohan@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