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열 < 한국신용정보(주) 사장 >

에덴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고 지내도 부끄러움을 모를만큼
순수했다.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에 자기들이 벗고 있다는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옷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나뭇잎으로 부끄러운 곳을 가리면서부터
순수함은 사라졌다.

그후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들은 좋은 옷을 만들어 입고 계속 죄를 지었다.

옷은 몸과 마음의 치부를 가려주는 가면이기 때문이다.

백일사진이나 돐사진을 보면 사내아이들의 아랫도리를 벗기고 찍은 사진들이
많다.

본인의 의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의 고추를 자랑스러워 하는 부모들의
잠재의식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좀더 커서 동네어귀에 모여서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 중에는 같은
또래의 사내아이들이 아랫도리를 안입은 채로 고추를 내놓고 서있는 사진들도
있다.

아주 친한 친구를 "봉알 친구"라고 한다.

이는 아랫도리를 벗고 다니며 마음도 순수했던 어린 시절부터 사귄 친구라는
의미다.

서로 아랫도리를 보여줘도 창피하지 않은 오래된 친구라는 뜻이다.

어린 시절 친구끼리 아랫도리를 서로 보여주면서 느끼던 묘한 동료의식의
추억이 어른이 되어서도 되살아나는 곳이 있다.

골프장에서 플레이가 끝나면 같이 목욕을 한다.

땀에 젖은 옷을 벗고 뜨거운 탕속에 몸을 담그면 낙원이 따로 없다.

라운드 후에 하는 목욕은 흘린 땀을 닦고 피로를 씻어내면서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샤워를 하고 탕속에 들어가서는 얼굴을 마주하고서 플레이 내용을
도란도란 복기하게 된다.

벗은 몸으로 그날 상대방의 플레이 내용을 서로 칭찬하거나 격려하는 덕담을
주고 받으면 어릴적에 벌거벗고 같이 놀던 봉알친구로 돌아간다.

남녀가 한번 만리장성을 쌓고나면 알고 지낸 기간이 얼마가 되든 간에
더없이 가까워진다.

그러나 처음 만나서 인사한 사이에 그날로 봉알친구가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은 골프밖에 없다.

골프장에서는 사회적 지위나 부귀가 어떻든 간에 아담의 나뭇잎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골프가 아주 매력있는 스포츠라는 또 하나의 이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