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수 내린 물에 석양이 빗길 제/.../맘있는 나그네의 창자를 끊노라/
낙화암 낙화암 왜 말이 없느냐/

춘원 이광수는 부여 낙화암에서 백마강을 굽어보며 백제의 망혼을 달랬다.

충남 부여 일대의 백제유적 답사는 "잃어버린 왕국의 유서"를 해독하는
여정이다.

부소산성, 정림사지 5층석탑 등 주요 유적지들이 멸망기와 깊이 관련돼
있다.

부여 부소산성(사비성)은 성왕때 축조된 후 백제가 멸망한 660년까지
1백23년간 백제의 중심지였다.

백제 중흥을 기치로 축성됐지만 함락과 함께 백제가 멸망했다.

왕국의 흥망사를 지켜본 대표적 유적지다.

부소산성은 당시 둘레 2.2km, 면적 약30만평으로 축조된 토성이다.

외적방어를 위해 백마강변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백마강은 방어용 해자 역할에 실패했다.

오히려 산성이 나당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진 뒤 성내 낙화암에서 뛰어내린
백제궁녀들의 수장터가 됐다.

낙화암은 궁녀들이 몸을 던진 것을 낙화에 비유해 이름이 후세에 붙여졌다.

금강의 일부분인 "백마강"이란 지명도 멸망기와 관련 있다.

나당연합군의 소정방 장군이 백마를 미끼로 강을 수호하는 용을 잡은 뒤
백제를 멸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다.

낙화암 정상에 있는 백화정은 궁녀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일제시대에
건립됐다.

그 아래 고란사는 기암괴석 및 백마강 등과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낸다.

고란사도 원혼추모를 위해 지어졌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부소산성보다 견고한 석성인 성흥산성에도 비가가 서려 있다.

나당연합군이 성흥산성을 우회해 부소산성을 함락시키자 성흥산성내
백제군들은 모두 자결했다고 한다.

부여 시내에 있는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9호)은 나당연합군의 공격시기에
사찰이 불탄 뒤 그 빈터를 1천4백여년간 홀로 지켜왔다.

목탑양식을 간직한 국내 최고의 석탑이다.

장중하면서도 소박한 균형미가 돋보인다.

삼국사기에 전하는 바대로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백제 문화의 특징을 대변한다.

그러나 탑신에는 소정방이 의자왕을 압송한 사실을 새겨놨다.

아픈 상흔을 안고 인고의 세월을 지켜온 셈이다.

이밖에 국립부여박물관에선 금동미륵보살반가상(해외전시중), 금동대향로
등 백제 유품의 예술미를 감상할 수 있다.

오는 10월 9~12일 열리는 백제문화제에선 각종 민속제전과 행사, 사진전
등을 통해 잃어버린 왕국의 체취를 접할 수 있다.

<> 교통 및 숙식 =서울 남부터미널이나 김포공항에서 부여행 버스들이
출발한다.

기차로는 논산에서 내려 부여행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승용차로는 천안~공주~부여 경유 도로를 타는게 보통.

부소산에 있는 관광안내소(*0463-30-2585)에서 자료를 얻어 답사를
시작한다.

부여읍내에 호텔은 없지만 여관과 식당들은 많다.

< 부여=유재혁 기자 yoo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