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락 스토리"도 드라머틱할 수 있을까.

최경주의 경우가 그렇다.

기를 쓰고 찾았던 볼 하나.

그러나 볼은 어디엔가 꼭꼭 숨어 버렸다.

그것은 "첫 메이저의 높고도 높은 벽이자 뼈 아픈 교훈"이었다.

<>.최경주는 로열 트룬 인근의 킬마녹GC (파73-전장 7천38야드)에서
벌어진 최종예선 첫날 (13일.이곳시간) 2언더파71타(버디4, 보기2)를 쳤다.

영국에서의 첫 골프, 그것도 생소한 링크스코스에서 마크한 첫 공식
스코어치고는 극히 희망적이었다.

14일 벌어진 2라운드 7번홀은 4백38야드의 파4홀.

그는 스푼 티샷으로 페어웨이 키핑을 노렸다.

그러나 볼은 바람에 밀리며 오른쪽 러프로 사라졌다.

잠정구를 치려 했으나 경기 진행 요원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볼을 찾았다는 것.

그러나 가서 보니 그 볼은 최경주 본인이 3일전 연습라운드때 잃어 버린
볼이었다.

"맥스플라이 프로"라는 브랜드도 같고 볼 번호 (2번)도 같았으며 그가
파란색 점을 찍어 표시한 것도 같았으나 그 볼은 결코 잠시 전 친 볼이
아니었다.

그것은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으나 양심의 문제였다.

최가 "찾고 못 찾고"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었다.

그와 경기요원 그리고 30여명의 갤러리들은 필사적으로 볼을 찾았다.

뒷팀까지 패스시키며 5분 동안 긴 억새풀 사이를 헤집었으나 별무소용.

그는 로스트볼을 선언하고 다시 티로 돌아가 3타째를 날려야 했다.

그 홀 스코어는 "한 많은 트리플 보기"가 됐다.

<>.최경주는 최종 3개홀에서 3언더를 치며 최선을 다했다.

16번홀 (파5-4백92야드)에서는 2백50야드 스푼샷을 홀 1m에 붙이며
이글을 노획했고 최종 18번홀 (파4-3백79야드)에서도 3m버디로 마무리했다.

2라운드 스코어는 이븐파 73타 (이글1,버디3,보기2,트리플보기1개)에
합계 2언더파 1백44타.

오후 1시께 경기를 마친 최는 6시쯤 끝나는 결과를 초조히 기다려야 했다.

3시까지만 해도 최의 포지션은 공동 5위권 7명에 속해 그런대로 희망이
있었다.

킬마녹에선 14명을 뽑기 때문에 동타인 경우 최소 연장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오후 뒤팀 선수들이 의외로 선전하면서 치고 올라 왔다.

본대회 진출은 4언더파 1백42타까지로 줄이 그어졌다.

결국 "로스트 볼 하나"로 얻은 2타가 결정적이었다.

11시간 비행의 영국행은 숨어버린 볼 하나가 종지부를 찍었다.

<>.사람들은 "로스트 볼 하나가 바로 실력이고 하나의 샷이 운명을
결정하는 게 골프"라고 말할지 모른다.

우리 모두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골프의 입장에선 "김종덕과 최경주가 함께
뛰는 메이저"가 너무도 절실했다.

그 절실함을 가슴에 새기며 최경주는 무엇을 배웠을 것인가.

"내가 메이저대회를 너무 크게 본 것 같아요.

겨뤄보니까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온다면 아주 잘 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미래를 위한 자신감을 가졌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