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정 < 골프칼럼니스트 >
- 김용원 < ''삶과 꿈'' 대표 >


골프칼럼니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최영정씨(66)와 김용원씨(62)는
30년 골프친구다.

두 사람은 골프가 대중화되어 있지 않던 60년대 직장동료로 골프에도
같이 입문했다.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 "쉬쉬" 하면서 연습장에 다녀오곤 했는데,
그때부터 형성된 선의의 경쟁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은 현재 칼럼니스트 출판가로서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코스에서만큼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는 라이벌이다.

핸디캡은 최씨가 10, 김씨가 6.

그러나 두 사람의 라운드에서는 무조건 스크래치다.


<>연습방법도 딴판

최씨는 최초의 골프기자였다.

그런지라 한장상 이일안씨등 당시 내로라하던 프로들에게 배울 기회가
많았다.

유명프로들의 폼과 이론들을 한번씩 섭렵했다.

연습보다는 실전을 통해 기량을 다듬어나갔다.

주위에 골프가 널려 있으니 골프에 대한 집착은 김씨에 비해 다소
약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반면 경제부 기자였던 김씨는 노력파였다.

김씨는 나름대로의 이론으로 연습을 중시했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골프에 어프로치했다.

김씨는 라운드후 동반자들이 샤워하는동안 혼자 연습장에 가 그날의
라운드를 복습하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다.

이것이 김씨 골프의 비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상외의 기량

진전은 예상외로 김씨쪽이 빨랐다.

김씨는 입문 1년만에 싱글핸디캡에 접어든뒤 2년째에는 핸디캡2~3의
스크래치플레이어에 가까워졌다.

김씨의 기량은 한양CC와 뉴코리아CC의 이사장배에서 메달리스트와
우승을 한꺼번에 차지한 것만 봐도 알수 있다.

최영정씨는 이를두고 "월급쟁이로서 입문2년째 2개골프장의 정상에
동시에 오른 것은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최씨는 폼.이론에 신경쓰느라 입문 5년이 지나서야 싱글핸디캡에
진입했다고.


<>중단과 전진

신문사를 떠나 75년 대우로 옮긴 김씨는 그뒤 출판사를 차릴 때까지
무려 16년동안 골프클럽을 만지지 못했다.

반면 최씨의 골프는 계속됐다.

최씨 역시 신문사를 나와 다른 직업으로 전환했지만, 그때부터 본격
골프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이론은 깊어갔고, 스윙은 마치 "유명프로의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환상적이었다.

"칼럼니스트라는 사실때문에 멋진 스윙을 추구하지 않을수 없었다"는
것이 최씨의 변.

물론 핸디캡도 줄어갔다.


<>세월따라 변하는 타법

원래 김씨는 스윙거,최씨는 히터였다.

김씨의 스윙이 꾸준한 연습을 통해 구축된 것이었다면 최씨는 소시적
힘만 믿고 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가 됐다.

장년이 돼서 다시 골프에 복귀한 김씨가 "거리"에 대한 집착으로 바뀐
반면, 최씨는 쇼트게임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

한참때의 핸디캡을 회복하지 못한 김씨는 지금 거리를 30야드 정도
늘리는데 온 신경을 쏟고 있다.

클럽챔피언급의 동반자들과 겨루려면 일단 드라이버샷을 멀리 보내야
하는데 지금은 210야드정도밖에 안나가기 때문이다.

장사타입의 최씨는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골프는 거리보다는
그린주위에서 판가름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골프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미시적" 게임을
중시하게 됐다.


<>영원한 라이벌

두 사람 모두 환갑을 넘긴 나이인데도 코스에서의 "입싸움"은 젊은이
못지않게 치열하다.

멘탈측면에서는 포커페이스인 김씨가 다혈질인 최씨보다 한수위.

김씨는 아무리 상황이 나쁘더라도 비관하지 않는다.

비록 4온을 했다해도 웃는 얼굴로 그린에 오른다.

그런뒤 그 10m퍼팅을 성공, 3m버디를 노리던 최씨의 기를 죽인다.

그러면 최씨는 마지막 그늘집에 들러 맥주 한잔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김씨도 OK.

먼저 마시자고 한 쪽이 먼저 흔들린 쪽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수
있는 일.

평생 라이벌인 두 사람의 결론은 "골프를 모르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다"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