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씨는 거의 매일 아침 골프연습장에서 만나는 분이다.

5년가까이 그렇게 골프연습장에서 보아 온 사람인데 금년들어서야
비로소 이야기를 나눴다.

L씨는 늘 선그라스를 끼고 다니고 옷은 연세에 걸맞지 않다 싶을만큼
"야하게"입는다.

어쩌다 그분이 연습장에 나오시지 않는 날은 금방 알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이 없는 골프연습장의 아침은 너무도 조용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외관으로 인한 그분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지난 5년여동안
늘 보아 오면서도 말한마디 붙이지 않았던 것같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매일 아침 L씨가 부부동반으로 연습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냥 연습장에 나오는데 그치지 않고 그 부부는 매일 아침 제일
먼저 골프연습장에 나오고 항상 같은 타석에서 연습한다.

내가 다니는 골프연습장에서 그토록 이른 아침에 골프연습장에 나오는
부부는 L씨부부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또 그분 주위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몰려 들기 때문에 약간은
소란스러웠던 점도 그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던 요인이다.

그런데 L씨는 요즘 필자를 보면 아주 반겨준다.

필자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기전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신 그분
형님밑에서 미리 변호사업무를 익힌 경험도 친근감을 더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L씨는 오늘아침 필자에게 자신의 골프에 관한 지론을 얘기했다.

그분의 골프론이 색달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L씨는 안양CC나 남부CC에 가면 골프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런 골프장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점잖빼느라"굳어져
있고 그 틈바구니에서 자신도 억지춘향노릇하느라 부담이 없는 환경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런 골프장에
가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고.

복장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화려하게 입어야 하고, 볼이 잘 맞는
경우 멋드러지게 육자배기 한 가락을 뽑을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멋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모양이니
우습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제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보다 일찍 그분을 알고 지내지
못하믈 후회한다.

그리고 필자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르면 발을 씻으리라"던 어부의 말을 알아 듣고도
세속과 어울리지 못한채 멱라에 몸을 던져 죽은 굴월을 떠울린다.

삼 에 있어서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