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가정폭력처럼 가해자 임시 조치 못 해
관련 법안 국회서 계류…"피해자 보호에 중점 둬야"
교제폭력 보호 '사각지대' 여전…생명을 운에 맡기는 피해자들
최근 연인을 상대로 한 일명 '교제폭력'(데이트폭력) 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돼 있어 법의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남경찰청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교제폭력 사범 226명(구속 5명, 불구속 221명)을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2021년에는 500명(구속 21명, 불구속 479명), 2022년에는 613명(구속 18명, 불구속 595명)이 입건됐다.

지난달 11일에는 경남 창원시 성산구 가음정동에서 20대 A씨가 옛 연인 B씨와 차로 이동하던 중 헤어진 사실을 두고 말다툼하다 A씨를 감금한 채 내달리고 폭행까지 해 불구속 입건됐다.

B씨는 과거 A씨의 폭행으로 지난 3월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 대상자로 분류됐으며 이날 경찰에 세 번째 폭행 피해를 신고했다.

문제는 교제폭력은 스토킹이나 가정폭력처럼 관련 법률에 따라 접근 금지나 유치장, 구치소 유치 등의 방법으로 가해자를 강제로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찰은 보복 가해가 우려될 경우 28개 문항으로 된 '범죄 피해자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를 통해 피해자 안전 조치를 할 수 있다.

등급이 '낮음'일 땐 112시스템 등록, '보통'일 땐 낮음 수준 조치에 맞춤형 순찰이 더해진다.

'높음'일 땐 보통 수준 조치에 주거 이전과 스마트워치 지급이 추가되며, '매우 높음'일 땐 높음 수준 조치에서 지능형 폐쇄회로(CC)TV 설치, 신변 경호가 더해진다.

하지만 이 같은 안전조치도 경찰이 권고할 수 있을 뿐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강제할 순 없다.

B씨의 경우도 본인이 원하지 않아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지 않았으며, 이날 폭행 신고 이후에도 별다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교제폭력 보호 '사각지대' 여전…생명을 운에 맡기는 피해자들
현재로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와 분리 조치할 수 없다 보니 구속 수사가 아닌 이상 불구속 상태에서 언제든 보복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서울 금천구에서도 교제폭력 신고에 불만을 품은 30대 남성이 옛 여자친구를 살해하기도 했다.

B씨 역시 이번에 세 번째 교제폭력을 당했지만, 경찰은 불구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어 언제든 네 번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사실상 생명을 운에 맡긴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우선 불구속 수사가 원칙으로 구속 영장 신청은 도주 우려나 주거 부정, 피해 정도 등을 종합해 결정한다"며 "이 사건은 아직 수사 중이라 피의자 신변 조치는 좀 더 있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교제폭력 관련 법안은 꾸준히 발의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국민의힘 김미애(부산 해운대을) 의원이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이 법안은 피해가 경미한 단계부터 수사기관의 선제적 개입으로 긴급 응급조치와 잠정조치 등을 할 수 있게 해 재범 발생과 강력 범죄 확산을 예방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교제폭력을 독립된 범죄 유형으로 보고 별도의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는지부터 교제폭력의 정의를 규정하는 것 등까지 관련 논의가 길어지면서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교제폭력은 워낙 여러 방면에서 발생해 범위를 정하는 것부터 사실 쉽지 않다"며 "동거 중인 교제 관계는 가정폭력처벌법으로, 비동거 중인 교제 관계는 스토킹처벌법 안에 교제폭력 조항을 넣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가해자 처벌은 처벌대로 하되 피해자 보호에 중점을 두고 법안을 조율한다면 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