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등이 버린 잡지 팔며 난전 형성, 국내 유일 헌책방 골목
[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⑩ 보수동 책방골목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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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으로 부산에 온 전국의 학교들은 주로 중구 구덕산과 보수동 일대 임시 피란학교를 세웠다.

이 때문에 당시 보수동 일대는 학생들의 등하교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이런 분위기 속 보수사거리에서 대청사거리를 연결하는 길이 160m의 골목 안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부산에는 주인 없는 헌책들이 많았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도주하다시피 부산을 떠났던 일본인들의 거주지에는 집집이 버려진 책이 수북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뱃길로 황급히 귀국길에 오른 일본인이 귀중품과 생필품을 먼저 챙기다 보니, 헌책들이 궤짝째 굴러다녔다는 이야기도 남아있다.

여기에 6·25 전쟁 때 부산항으로 들어온 미군이나 유엔군 등이 읽다 버린 잡지 등도 한몫했다.

피란민들은 헌 잡지나 만화책,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책들을 모아 보수동 사거리에서 박스를 깔고 학생들에게 팔며 난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3일 부산시에 따르면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가장 먼저 책을 판 사람은 북한에서 피란을 온 손정린 부부로 알려졌다.

당시 보수동·남포동·광복동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피란을 온 문화예술인과 지식인들이 많이 찾던 다방들도 몰려있어 책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보수동 옆 동광동에는 출판사나 인쇄소 거리 등이 생겨나기도 했다.

[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⑩ 보수동 책방골목의 탄생
보수동 책방골목은 전쟁이 끝나고 1970년대 부산에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아지며 한때 이곳에는 70여 개의 서점이 들어설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당시 160m 골목 양쪽에 서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섰고, 신학기가 되면 새 교제를 구매하기 위해 책방 앞에 줄이 생기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1970년대 시중에서 자취를 감춘 김지하, 양성우, 신경림 시인 등의 금서나 비매품, 유인물들이 은밀히 거래되기도 했다.

1978년에 결성된 양서협동조합이 책방골목 내 차린 '협동서점'은 부산 민주화운동의 수원지 역할을 했다.

여기서 흘러 나간 인문·사회 관련 정보들이 부마민주항쟁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2000년대 들어서 급격히 쇠락했다.

원도심이 쇠퇴하고, 인터넷 서점의 등장과 영상문화 발달로 책의 수요가 줄었다.

지금은 20여개의 상점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현재는 국내에서 유일한 헌책 골목으로 남아있는 상징적인 장소"라면서 "보수동 책방골목의 역사를 지키고 다시 살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