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수복싱클럽 김병민씨 "공식전 뛰어 승리하고 싶다"
[휴먼n스토리] 노장은 멈추지 않는다…전국 유일 90대 프로복서
"오로지 복싱에 몰입하는 순간이 좋습니다.

"
지난달 30일 인천시 서구 심곡동 정수복싱클럽.
묵직한 타격음과 거친 숨소리가 뒤섞인 체육관에서 '세계 최고령 프로 복서' 김병민(90)씨가 쉴 새 없이 주먹을 뻗었다.

1933년 출생인 그는 국내에서 유일한 90대 프로복서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서 나오는 자세는 안정적이었고 샌드백을 응시하는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30분간 이어지는 강도 높은 훈련에 지칠 법도 했으나 백발 노장은 힘든 기색 없이 운동 루틴을 소화해냈다.

김씨는 "복싱은 단순히 상대방을 때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스포츠"라며 "그 매력에 푹 빠져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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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어른들 틈 사이에서 몰래 권투 경기를 구경하던 소년은 항상 마음 한편에 복싱을 향한 열망을 간직했다.

김씨는 그 시절 한국 프로복싱 중량급을 호령하던 정복수·박형권·송방헌 등 선수들을 동경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권투를 배우진 못했다.

그렇게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나와 같은 곳에서 30년 가까이 행정 직원으로 일했다.

안정된 삶이었지만, 새로운 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퇴직 이후 건강 관리를 위해 시작한 태권도는 김씨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20년간 태권도를 배우다가 왼쪽 무릎을 다쳐 한동안 운동을 관뒀지만, 도전 정신은 꺾이지 않고 복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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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2019년 5월 복싱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그는 "언젠가 복싱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며 "더는 미룰 수 없어 집 근처 복싱 체육관을 무작정 찾아갔다"고 했다.

당시 구순을 바라보던 노인의 꿈은 진경철(49) 관장의 든든한 지원 속에 현실이 됐다.

진 관장은 "체육관에 처음 오셨을 때 연세를 생각해 단호하게 거절했는데 배우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했다"며 "되돌아보면 괜한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상 밝은 얼굴로 운동을 하러 오셔서 남다른 열정을 보여준다"며 "젊은 선수들을 가르칠 때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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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지난해 8월 한국권투위원회(KBC)가 주관하는 '제212회 프로테스트전'을 통과해 당당히 합격증을 손에 넣었다.

진 관장은 전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90대 복서는 김씨가 유일무이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씨는 미트를 잡은 진 관장과 호흡을 맞춰 완성도 높은 복싱 기술을 연달아 선보였고 현장에서는 심사위원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KBC는 2년여 전부터 만 39세 이상을 대상으로 실버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김씨가 가장 좋아하는 기술은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의 전매특허인 훅-어퍼컷 연계 동작이라고 한다.

그의 새로운 목표는 프로 복서로서 공식전을 치러 승리하는 것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스파링 상대가 없는 데다 안전상의 이유로 진 관장도 시합을 만류하고 있지만, 김씨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김씨는 2일 "태권도는 부상 전까지 6단까지 달성했다"며 "이제는 기회가 된다면 프로 복서로서 열심히 훈련해 시합에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누구나 의지가 있으면 복싱을 할 수 있다"며 "도전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