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포항 곳곳에서 복구작업…명절 분위기는 사라져

"추석을 우예(어떻게) 쇠노? 집이 절단났는데…"
"대목은 끝났다"…태풍 피해 주민들 씁쓸한 추석맞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8일 경북 경주시 율동 선두마을 주민 이성우(69) 씨는 추석맞이는커녕 태풍 '힌남노'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일이 걱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동네 토박이인 그는 "한 20년 전 태풍 때 말고는 물난리가 난 적이 없다.

시청 말로는 마을 배수펌프가 작동을 안 해서 그렇다는데 진짜 문제는 제방을 만들어야 하는데 예산이 없어서 중단됐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추석 때 가족, 친지들도 오지 말라고 했다"는 이 씨는 "음식 준비할 형편도 안돼서 산소에 가서 술이나 한잔 올려야겠다"고 했다.

"대목은 끝났다"…태풍 피해 주민들 씁쓸한 추석맞이
선두마을은 태풍이 휩쓸고 가면서 마을 옆 하천이 범람해 동네 전체가 물에 잠겼다.

육군 50사단 장병들이 전날부터 복구를 돕고 있지만, 집 앞마다 가득 쌓인 각종 쓰레기와 물기를 말리기 위해 내놓은 가재도구를 보면 일상으로의 회복은 아득해 보였다.

붕괴 위험으로 인근 주민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던 경주시 강동면 왕신저수지는 둑 보강작업으로 분주했다.

굴삭기 6대를 포함해 각종 중장비가 비에 쓸려 내려간 둑 사면의 흙을 채우고 갈라진 틈을 다졌으며 범람을 막기 위한 배수 파이프를 새로 설치하고 있었다.

저수량 185만t의 왕신저수지에는 태풍 당시 시간당 90㎜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물이 둑을 넘고 사면 일부가 무너졌다.

"대목은 끝났다"…태풍 피해 주민들 씁쓸한 추석맞이
약 10만㎡ 규모인 포항종합운동장은 부지의 절반가량이 침수 피해 차로 빼곡했다.

각 보험사 관계자들은 밀려드는 침수차들을 확인하고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구슬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던 한 보험사 직원은 "현재 눈에 보이는 모든 차가 침수차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차들을 보험 처리하는 업무를 모두 끝내려면 추석 연휴에 쉬기는커녕 밤샘 근무도 모자랄 판"이라고 푸념했다.

"대목은 끝났다"…태풍 피해 주민들 씁쓸한 추석맞이
전통시장 가운데 피해가 컸던 포항시 오천읍 오천시장은 시장 전체를 뒤덮었던 진흙은 거의 치운 상태였다.

한·미군 해병대원과 경찰, 공무원 등 이틀간 1천여 명이 복구작업에 투입된 오천시장은 겉보기에는 깨끗해졌지만 뼈아픈 속내는 지울 수 없었다.

이곳에서 40년 넘게 떡집을 해온 김성열(75) 씨는 "냉장고 4대, 쌀 열 가마, 각종 기계 등 피해 액수가 어림잡아도 1억 원은 족히 된다"면서 "추석 대목은 이미 끝났고 지금 장사를 접나 안접나 그걸 고민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목은 끝났다"…태풍 피해 주민들 씁쓸한 추석맞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