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구조로 소방서 출동 못해…강남서 서재원 경위·강소연 순경, 화재 진압
산모·아기 등 대피 도와…"나 아니면 누가 하나 생각"
폭우 쏟아지던 밤 산후조리원 화재…경찰은 뛰어들었다
"정신없이 불을 끄고 젖병 소독기를 보는 순간 '아, 아이들이 위험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서울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 소속 서재원 경위(33)와 강소연 순경(26)은 폭우가 쏟아진 8일 밤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두 사람은 산후조리원에 있던 산모와 아이들을 위해 직접 소화기를 들어야 했던 당시를 이렇게 돌아봤다.

13일 강남경찰서 등에 따르면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던 8일 오후 9시 30분께 강남구의 한 산후조리원 천장에서 물이 흘러내리며 전기분배기에서 불이 났다.

사고 당일 소방서는 폭주하는 구조 요청을 감당하느라 이미 모든 대원이 출동해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 산후조리원의 산모와 가족들은 각자 방에 있던 탓에 화재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당시 인근 신호등이 고장나 도로를 통제하고 있던 서재원 경위와 강소연 순경은 경찰에 대신 도움을 요청하는 산후조리원 직원의 다급한 112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장비는 순찰차에 있던 소형 소화기뿐이었다.

서 경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빗물이 흘러 합선이 일어나면서 불이 난 상황이었다"며 "스파크가 멈추지 않아 소화기로 계속 불을 꺼야 했다"고 설명했다.

서 경위는 "내부에 산모와 신생아, 직원까지 합쳐서 총 60여 명이 있었는데 각 방이 분리돼 일일이 들어가 화재 사실을 알려야 했다"며 "산모들이 처음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해 당황하다 많이 겁을 먹기도 했다"고 전했다.

강 순경은 "방독면 없이 마스크 한 장으로 유독가스를 버텨야 했다"며 "정신없는 와중에도 연기와 냄새가 심했다"고 말했다.

폭우 쏟아지던 밤 산후조리원 화재…경찰은 뛰어들었다
두 사람이 진화 작업을 위해 화재 현장에 출동한 것은 처음이었다.

서 경위는 "저희가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순간적으로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피하는 산모와 가족들이 두려워하는 걸 보니 '해야 하나'라는 고민보다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들어갔다"며 "'나 아니면 누가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불은 10분 내로 진화됐다.

크게 다친 사람도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 순경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유독가스로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뿌듯했다"며 "소화기로 끌 정도의 화재 규모라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경찰과 소방·구청이 잘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폭우가 내렸던 8일에는 당일 근무가 아닌 지구대 직원들까지 현장에 나와 총력 대응을 했지만, 기관 간 소통이 어려워 막막하기도 했다.

서 경위는 "불법 유흥업소, 도박장 등을 단속할 때도 구청과 협업하는 등 다른 기관과 연계되는 일들이 많다는 걸 느끼긴 했다"며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 되니까 연계 시스템의 필요성이 더 절실하게 와 닿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