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시범실시 거쳐 2025년부터 4년간 단계적 시행 검토
저출산·고령화에 입직연령 낮추기…사회적 합의가 관건


교육부가 29일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5세로 1년 낮추는 내용의 학제개편 계획을 내놓으면서 추진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예고했다.
76년만에 초등 입학연령 하향 추진…시작부터 논란 예고
◇ 표면적으로는 공교육 강화…실질적으로는 '입직연령' 낮추기?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대통령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보육의 대상을 늘려 교육격차를 줄이고자 학제개편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모든 국민은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6세가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 해 3월 1일에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즉 '만 6세'가 된 다음해 3월, 한국 나이로 따지면 8세가 되는 해에 입학하는 것인데, 교육부는 이 의무교육 연령을 만 5세로 1년 앞당겨 교육과 돌봄의 격차를 줄이고, 어린이들이 질 높은 교육을 '적기'에 동등'하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박 부총리는 "영유아와 초등학교 시기가(성인기에 비해) 교육에 투자했을 때 효과가 16배 더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취학연령 하향조정은)사회적 약자도 빨리 공교육으로 들어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정부의 이런 조치가 입직연령(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나이)을 낮춰 초혼연령을 앞당기고 노동기간을 늘리기 위한 대책으로 풀이하고 있다.

공교육 강화인 동시에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악영향을 극복하려는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2006년 기준 우리나라의 입직연령은 25.0세(대졸자 26.3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2.9세(2000년)보다 2년가량 늦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입직연령이 1세 낮아지는 경우 초혼연령이 평균적으로 0.28세(약 3개월) 낮아진다.

일찍 졸업하고 취업할수록 결혼을 위한 경제적 여건이 조성되는 시기가 빨라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최근 보고서에서 5세 유아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설명하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낮출 경우 사회진출 시기를 당겨 경제활동을 할 기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특히 당초 교육분야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지 않았던 학제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지난해 우리나라 총인구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감소하는 등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2025년부터 4년간 '만 5세' 순차적 입학 검토

교육부는 당장 2025년부터 취학연령 조정을 단계적으로 시작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렇게 될 경우 취학연령이 낮아지는 것은 76년 만에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1949년 최초 제정된 '교육법' 제96조에서부터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만 6세로 정했다.

박순애 부총리는 "2022년 말 대국민 설문조사를 하고 2023년 시안을 만든 뒤 2024년에 확정하면, 2025년정도 되면 첫학기에 진학할 수 있지않을까 한다"며 "2024년에 시·도 교육청이 수용하면 시범실시하는 지역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2025년부터 2028년까지 4년간, 2018∼2022년(5년) 출생 아동들을 나눠서 입학시키는 방안이 언급됐다.

예를 들면 2025년에는 2018년 1월∼2019년 3월 출생 아동이 입학하고, 2026년에는 2019년 4월∼2020년 6월생, 2027년에는 2020년 7월∼2021년 9월생, 2028년에는 2021년 10월∼2022년 12월생이 입학하는 식이다.

박 부총리는 "(취학연령이) 1년 갑자기 앞당겨지게 되면 교사나 공간의 문제가 있다"며 "대안적으로 25%씩 순차적으로 4년에 걸쳐서 학제를 당겨서 입학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나리오대로라면 현재의 학교 시설과 교사 인력으로 충분히 학제개편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다.

◇ 교육현장·학부모 여론수렴 과정서 진통 일듯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낮추는 방안은 1990년대부터 진보·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거론돼 왔다.

다만, 정부가 '5세 입학'의 길을 법적으로 열어둔 이후에도 학교 현장과 학부모의 호응이 크지 않았다.

각 시·도 교육청이 1990년대 후반 만 5세 아동의 조기입학을 허용했지만 자녀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학부모의 신청이 저조했다.

집단 따돌림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오히려 취학의무 유예신청을 통해 자녀를 1년 늦게 학교에 들여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게 생겨났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도 저출산 대책으로 취학연령을 앞당기는 안을 검토했지만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

전문가들 역시 공교육이 포괄하는 아동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이것을 초등학교 입학연령 조정으로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아들이 발달단계에 적합하지 않은 초등학교 교육을 받는다면 학교 적응과 사교육 측면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초등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 교육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제도 측면에서는 초등교원 수급·양성 체제를 전면 개편하고, 교과과정을 손질하는 한편, 학교시설 기준 개정 등 적지 않은 준비가 필요하다.

학부모들의 반발도 클 것으로 보인다.

2018∼2022학년도 출생아의 경우 다른 학년보다 많은 인원이 함께 진학·졸업을 하게 되면서 20년 가까이 더 거센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도 이런 우려를 고려한 듯 학제개편 등은 국가교육위원회와 함께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취학현황 등 기초조사, 취학연령 하향 등에 대한 지역별 수요조사, 교원·시설 등 교육인프라 현황 분석을 토대로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하겠다"며 "대국민 토론회·공청회, 관계기관 간 협의·조정과 국가교육위원회의 집중 숙의 과정을 토대로 최종적인 합의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