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회의록 유출로 논란 촉발…檢,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첫 기소
대통령기록물 인정 여부 뒤집은 법원…서해피격·강제북송 수사 영향 관측도
10년 만에 마무리된 회의록 폐기 논란…'초본도 기록물'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사건에서 시작된 '사초 실종' 사건이 논란 촉발 후 10년 만에 마무리됐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8일 대통령기록물법 위반과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로 기소된 백종천(79)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65) 전 청와대 안보비서관(문재인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의 재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통령기록물 인정 여부를 둘러싼 양측의 법정 다툼은 파기환송 끝에 검찰의 승리로 종결됐다.

◇ 회의록 유출서 시작된 검찰 수사…'사초 실종' 의혹으로 확산
'사초'의 행방을 둘러싼 논란의 시작은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문헌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정 전 의원이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며 반발했고, 그를 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진실 공방은 대선 후에도 계속됐다.

2013년 6월 국가정보원에 보관된 회의록 발췌록을 열람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NLL 포기 취지 발언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하자, 야당 대권 주자였던 문재인 당시 의원은 회의록 공개를 제의하며 맞섰다.

결국 국회는 여야 합의로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회의록 열람을 시도했지만, 회의록을 찾는 데 실패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사초'에 해당하는 회의록이 폐기나 은닉됐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2013년 7월 참여정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회의록 유출에서 시작된 사건이 '사초 실종·삭제' 의혹으로 번진 것이다.

검찰은 회의록을 찾기 위해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 했지만, 91일간의 대대적인 수색에도 회의록을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봉하 사저로 복사해간 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 '이지원(e-知園)'에서 회의록 초본이 삭제된 흔적을 발견했다.

검찰은 수사 끝에 노무현 전 대통령 지시로 대통령 기록물의 삭제가 이뤄진 것으로 결론 내리고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 전 비서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및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2007년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 제정 후 해당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첫 사례였다.

10년 만에 마무리된 회의록 폐기 논란…'초본도 기록물'
◇ '대통령기록물' 여부 두고 공방…대법, 1·2심 법리 판단 뒤집어
법리 판단 선례가 없던 사건에서 쟁점이 된 것은 삭제된 회의록이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피고인 측은 해당 문서가 추후 최종본을 작성하는 데 사용된 단순 초본에 불과하므로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삭제된 회의록이 애초부터 대통령의 결재를 위해 올려진 문서였고, 정상회담 당시 실제 사용된 호칭·말투 등이 생생하게 반영돼있는 등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가 있으므로 대통령 기록물로 봐야 한다고 맞섰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법률상 '대통령기록물'을 ▲ 대통령이나 대통령 보좌기관·자문기관 및 경호기관·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등이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해 ▲생산·접수를 완료한 ▲문서·도서·대장·카드·도면·시청각물·전자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자료 또는 대통령상징물(행정박물)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삭제된 회의록이 첨부된 문서관리카드는 결재가 예정된 문서일 뿐, 실제 최종 결재가 이뤄진 것은 아니므로 '생산이 완료된 문서'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피고인들은 무죄 선고 후 "정치검찰의 그릇된 행태가 확인됐다"며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야권 또한 검찰이 표적 수사와 무리한 기소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그대로 마무리되는 듯싶었던 사건은 대법원에서 완전히 뒤집혔다.

2020년 12월 대법원은 "회의록 파일이 첨부된 문서관리 카드는 노 전 대통령의 결재를 거쳐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됐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문서관리 카드에 최종 결재를 하지는 않았지만, 회의록을 열람하고 확인한 만큼 사실상 결재가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파기환송심 역시 대법원과 같은 취지로 삭제된 회의록을 대통령 기록물로 판단하고, 피고인들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서 사건은 9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공소 사실 모두 유죄'로 종결됐다.

공문서 작성 과정에서 최종본을 작성하는 재료가 된 '로데이터'에 가까운 문서라도 실질적인 결재가 이뤄졌고,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면 임의로 삭제해서는 안 된다는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10년 만에 마무리된 회의록 폐기 논란…'초본도 기록물'
◇ 서해 피격·강제 북송 사건서도 '기록삭제' 쟁점…기소 판단 영향 관측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수사 중인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서도 기록 삭제 의혹이 쟁점으로 떠오른 만큼, 이번 대법원 판단이 향후 검찰 기소 여부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정원은 자체 조사를 통해 박지원 전 원장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내부 생산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며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같은 사건에서 국방부가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 올라온 기밀 정보를 삭제한 사실도 드러났다.

탈북 어민들의 정부 합동 조사를 조기 종료시킨 혐의로 고발된 서훈 전 국정원장은 사건 보고서에 담겨 있던 '강제 수사 필요', '귀순' 등의 표현은 빼고 '대공 혐의점은 없음'이라는 내용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수정했다는 의혹(허위 공문서 작성)을 받고 있다.

이들은 보고서를 삭제·수정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삭제된 정보의 원본이 남아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사건의 전개와 당사자들의 해명에 유사점이 많은 만큼, 검찰은 진상 규명 작업을 마치는 대로 회의록 폐기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검토해 적용 법리 및 기소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