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담패설, 장난처럼 인식…외부 성폭력과 차이 없어"
반복되는 대학가 성폭력…"단호한 조치·예방교육 필요"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여학생이 캠퍼스에서 숨졌다.

이 학생은 한 단과대학 건물에서 같은 학교 1학년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3층에서 추락했다.

새벽에 1시간 넘게 혼자 쓰러진 채로 방치된 그는 호흡과 맥박을 겨우 유지하다가 결국 병원에 옮겨진 뒤 숨졌다.

범행 직후 피해자의 옷을 다른 곳에 버리고 자취방으로 달아난 남학생은 준강간치사 등 혐의로 구속돼 검찰에 넘겨졌다.

반복되는 대학가 성폭력…"단호한 조치·예방교육 필요"
◇ "학내 성범죄, 외부 성범죄와 차이점 없어"
대학 내 성범죄는 성폭행·불법 촬영·성추행 등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연세대에서는 최근 학교 여자 화장실에서 여학생을 불법 촬영한 20대 남성 의대생이 경찰에 구속됐다.

지난 4월에는 경기도 모 대학교 여자 탈의실에서 휴대전화로 불법 촬영을 한 20대 남학생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2017년 서울의 모 대학교에서는 학과 행사 후 잠든 여후배를 추행한 남학생이 퇴학됐고, 비슷한 시기 서울의 다른 대학교에서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하던 중 같은 학년 여학생을 성추행한 남학생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5일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년 대학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2018년 3년간 대학에서 접수한 성희롱과 성폭력 사건은 모두 1천164건이었다.

2016년 245건, 2017년 368건, 2018년 551건으로 매년 늘었다.

신고로 이어지지 않은 건까지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은 대학 내 성범죄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끊이지 않는 캠퍼스 성범죄가 결국 사회 전반의 왜곡된 성 의식과 맞닿아 있다는 입장이다.

교육부의 2018년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는 음담패설과 일명 '섹드립'이 장난처럼 소비되는 대학 문화에서 학생들이 성폭력에 점점 둔감해진다는 면을 지적하기도 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런 종류의 남성에 의한 여성 성폭력은 끊임없이 발생해왔다"며 "이번 사건은 '캠퍼스에서 대학생이 대학생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것 외에 다른 성범죄와의 차이점은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대학가 성폭력…"단호한 조치·예방교육 필요"
◇ 안전하지 않은 학교 공간…대책 없나
교육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학의 성폭력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야간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인하대도 보안 강화를 위해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모든 건물의 출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보안 강화보다 학교 측의 단호한 후속 조치와 성폭력 예방 교육의 내실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국가인권위는 관련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대학은 사건화가 되기 전 원만한 해결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성폭력 사건이 은폐·축소되거나 형식적 해결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고 판단했다.

2015년 이뤄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 강화 방안 연구'에서도 학교가 구성원들에게 발생하는 가해에 필요한 조치나 징계를 즉각 시행하지 않으면 피해와 가해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학교 측의 빠른 대처가 일종의 경고 효과를 주고 수면 아래 묻힌 피해의 표면화도 도울 수 있다는 취지다.

오 교수는 "보안을 강화하겠다는 학교 입장도 이해는 된다"면서도 "대학은 24시간 돌아가는 곳인데 학생조차도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대책은 이번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대학이 보다 질 좋은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 것도 방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