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모르는 친구의 귀와 입 역할…소외 없이 공동체 융화
"내 친구는 통역사" 학교 적응 돕는 몽골 어린이들의 '찐 우정'
지난 4월 중순 몽골에서 입국해 강원 동춘천초등학교로 전학 온 어치르(9)군은 낯선 학교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강원대학교 유학생인 엄마를 따라 한국으로 오긴 했지만 "안녕하세요" 정도의 간단한 인사 외에는 한국말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글은 전혀 몰라 초등학교 3학년 과정 수업을 어찌 따라갈지 막막했다.

하지만 어치르에게는 든든한 친구가 있었다.

학교는 모든 것이 낯선 어치르를 위해 6년 전 몽골에서 와 한국 생활에 완전히 적응한 급우 친공(9)군을 단짝으로 맺어줬다.

3학년 1반 교실 안에서 이들은 호흡이 척척 맞는 짝꿍이다.

특히 친공은 한국어와 한글이 모두 서툰 어치르를 위해 어느 곳에서든 '개인 통역사'를 자처했다.

"내 친구는 통역사" 학교 적응 돕는 몽골 어린이들의 '찐 우정'
선생님의 수업 내용과 질문을 몽골어로 척척 설명해주고, 발표 시간이면 어치르의 몽골어를 한국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동시통역해 줄 정도다.

수업 시간에 이들을 보면 영락없는 단짝이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교과서를 들여다보는 두 소년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만든다.

급식실에서도 어치르는 친공의 통역이 없다면 맛있는 반찬을 더 먹기 힘들다.

자칫 이런 역할이 귀찮을 수 있지만, 친공은 어치르를 '좋은 친구'로 여긴다.

친공은 "공부도 놀기도 같이 하고, 함께 혼도 난다"며 "좋은 친구 사이지만 얼마 전에 빌린 1천원은 빨리 갚았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어치르도 어색한 한국어로 "좋고 친한 친구"라고 말했다.

동춘천초에는 다문화 학생 36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는 전교생 232명 중 15.5% 차지한다.

특히 36명 중 몽골 학생이 17명으로 가장 많다.

이처럼 다문화 학생이 특별하지 않은 분위기도 어치르의 학교 적응에 도움을 줬다.

"내 친구는 통역사" 학교 적응 돕는 몽골 어린이들의 '찐 우정'
같은 반 친구 최예나(9)양은 "도와주는 친구가 대단하고 도움받는 어치르도 잘 따라와서 다행"이라며 "몽골어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신기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어치르는 친공의 도움이 없었다면 교실 안에서 그저 조용하고 배움이 더딘 친구로 여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통역사로 나선 친구가 소통의 다리가 되면서 참 소중한 재능을 품고 있는 귀한 아이가 됐다.

어치르의 꿈은 화가다.

빈 공책에 연필로 만화 캐릭터들을 쓱쓱 그려내면 주위 친구들은 감탄하기 일쑤다.

담임인 정배영 선생님은 1일 "친공이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다리를 많이 다친 적이 있는데 어치르가 부축을 해주며 다니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며 "그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이가 아닌 서로 돕는 친구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수업 중 '우리에게 힘을 주는 한마디'를 적는 과제가 나왔다.

어치르는 가지런한 몽골 글씨로 '친구들아, 힘을 내자'라는 내용을 적었다.

이렇게 한 명의 귀한 다문화 가정 어린이는 한국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내 친구는 통역사" 학교 적응 돕는 몽골 어린이들의 '찐 우정'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