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022 유죄 확정판결 분석…헌법재판소 결정 이후로도 반복
임신중절 알리겠다며 협박·금품요구…"사회적 낙인 없애야"
임신중절 경험을 빌미로 여성들을 협박하는 범죄가 끊이지 않으면서 비범죄화를 넘어 임신중절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없앨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연합뉴스가 2020년부터 올해까지 전국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관련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헌법재판소의 불합치 결정 이후로도 "낙태 사실을 알리겠다"며 여성들을 협박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이를 빌미로 돈을 뜯어내거나 성폭행하는 등 추가 범죄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A씨는 2019년 8월 여자친구와 헤어지자 자신과 사이에서 임신한 아이를 낙태한 사실을 그녀의 부모와 직장에 알리겠다고 위협했다.

이후 그는 협박에 못 이겨 자신의 주거지로 찾아온 피해자를 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A씨의 죄질이 불량하다면서도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고려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B씨는 남동생의 아내인 피해자가 과거 2차례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던 점을 약점으로 삼고, 이를 자신의 부모(피해자의 시댁)에게 알릴 것처럼 협박해 750만원 상당의 금품을 뜯어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남동생 부부가 연락을 피하자 피해자의 부모에게도 같은 취지로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B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임신중절 알리겠다며 협박·금품요구…"사회적 낙인 없애야"
판결문을 분석해보면 피해 여성과 교제했던 남성들이 이별에 앙심을 품고 범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폭로의 상대방은 피해 여성의 부모와 직장, 지인들, 새로이 교제하는 남성 등으로 다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거나 전단을 만들어 뿌리겠다는 경우도 있었다.

C씨는 2020년 7월 여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자 "네가 다니는 교회와 너의 아버지가 근무하는 학교에 낙태 사실을 모두 유포하겠다.

네가 이사를 하더라도 낙태 사실은 너를 평생 따라다닐 것"이라고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고, 별도 혐의까지 더해져 징역 4년형을 받았다.

D씨는 전 여자친구가 자신의 연락을 피하자 낙태 사실을 지인들에게 알리겠다는 등 7개월간 지속해서 협박했다.

그는 법원의 접근금지 가처분 결정을 어기고 집까지 찾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지난해 10월 D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같은 사례가 끊이지 않는 것은 임신중절의 비범죄화 이후에도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형법 전문 한 변호사는 "과거엔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이 많았는데, 낙태죄 폐지 이후 줄어드는 추세"라면서도 "사회적 낙인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명예훼손·협박 범행은 계속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임신중절 사실을 무단으로 게시하거나 유포하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는다.

창원지법은 전 여자친구의 임신중절 사실을 SNS에 올린 남성에게 2020년 12월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