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한 기관이 완전 다른 말"…'눈치보기 수사' 비판
2년 전에는 월북이라더니…정권 바뀌자 말 바꾼 해경
해양경찰이 16일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한 2년 전 중간 수사 결과를 뒤집으면서 '정권 맞춤식'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해경은 문재인 정부에서는는 군 당국의 첩보와 피해자의 도박 빚 등을 근거로 해당 공무원이 월북했다고 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한 달 만인 이날 월북을 단정할만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 "월북 판단"→"단정 못해" 결론 번복한 해경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인 A(사망 당시 47세)씨가 실종된 시점은 2020년 9월 21일이다.

A씨는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 해역으로 표류했고, 이튿날 북한군 총격에 숨졌다.

이에 해양경찰청은 A씨 사망 1주일 뒤와 한 달 뒤 각각 진행한 언론 브리핑에서 그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윤성현 당시 해경청 수사정보국장(현 남해지방해경청장)은 "(A씨가) 사망 전 수시로 도박했고 채무도 있었다"며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박 자금 규모·기간·횟수뿐만 아니라 채무 금액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해경은 이날 2년 전 중간수사 결과를 뒤집었다.

박상춘 인천해경서장은 "피격된 공무원의 월북 여부를 수사했으나 북한 해역까지 이동한 경위와 월북 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A씨의 월북 판단 근거로 제시한 국방부 첩보 자료 등으로는 월북을 단정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앞서 해경은 군 당국의 첩보를 근거로 내세워 북한이 A씨의 이름·나이·고향 등 신상 정보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가 월북 의사를 표현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A씨가 단순 표류했을 경우 이동했을 예측 지점과 실제 발견된 위치 간 33km가량 차이가 있다는 표류 예측 결과도 월북 판단의 근거로 내놓았다.

두 지점 간 거리 차이가 큰 만큼 A씨가 발견된 지점까지 이동하기 위해 수영 등 '인위적인 노력'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었다.

김대한 인천해양서 수사과장은 이날 "그때는 수사를 진행하는 단계였고 중간 브리핑을 한 것"이라며 "당시 국방부 자료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정황 등을 토대로 (월북으로) 판단했지만 (수사 결과 월북으로) 인정할 만한 게 없었다"고 했다.

김성구 국방부 정책기획차장도 "다양한 첩보를 통해서 (월북을) 추정했는데 자의에 의해 월북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2년 전에는 월북이라더니…정권 바뀌자 말 바꾼 해경
◇ 섣부른 월북 판단…"정권 눈치 본 수사" 비판
해경의 이 같은 말 바꾸기를 놓고 정권 눈치보기 수사를 한 게 아니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해경이 문재인 정부 때 정권의 눈치를 봐서 섣부르게 A씨의 월북 가능성을 부각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건이 발생한 2020년 9월은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 진전과 종전선언 추진에 힘을 쏟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사 발표였다는 지적도 있다.

현 대통령실도 문재인 정부가 남북 대화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북한 눈치를 보며 적절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도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길래 (정보를) 알려주질 못하냐"고 비판하며 집권하면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해경이 수사 결과를 번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해양경찰청에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형 이래진씨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나의 기관이 완전히 다른 말을 하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동생이 4.5노트(8.3㎞/h)의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헤엄쳤다는 자료까지 발표했었는데 과거에는 어떤 근거로 그런 억지 주장을 했었는지 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수사과장은 "지금까지 수사가 지연된 점에 대해 유족분들에게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월북 판단 발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말하기 전에 현재 고소가 된 부분도 있어 종료된 이후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정책기획차장도 "월북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있다고 하면서 국민들에게 혼란을 초래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