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아리이자 스타트업 베가스페이스
"신속 재발사 가능한 모듈형 발사체 개발해 우주 운송사업 선도"

"탄광은 아버지 삶이지 제 삶이 아니에요.

다시는 안 내려갈 거예요.

저는 우주로 가고 싶어요.

"
1999년 개봉한 영화 '옥토버 스카이(October Sky)'의 주인공 호머 히컴의 대사다.

'옥토버 스카이'를 꿈꾸며…제주서 로켓 쏘는 소년들
미국 탄광 마을에 사는 호머는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보고 로켓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는다.

하지만 탄광에서 평생을 보낸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잇길 바랐다.

아버지 몰래 로켓을 만들며 갖은 고난이 이어졌지만, 그는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친구들과 함께 개발한 로켓으로 전미 과학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을 지낸 호머 히컴의 실제 이야기다.

제주에서도 '옥토버 스카이'를 꿈꾸며 로켓을 쏘아 올리는 소년들이 있다.

제주영어교육도시 내 세인트존스 베리 아카데미 제주에 재학 중인 허성현(17)·양준우(〃)·최현우(18)·한승준(〃) 군과 한국국제학교 제주 캠퍼스에 다니는 황준서(17)·박성재(〃) 군이 모인 베가스페이스(Vega Space)다.

베가스페이스는 고등학교 동아리 겸 초소규모 항공우주 스타트업이다.

2018년 시작해 2020년 11월에는 사업자등록까지 받아 로켓을 개발하고 있다.

'옥토버 스카이'를 꿈꾸며…제주서 로켓 쏘는 소년들
지난 5일 오후 제주영어교육도시 내 한 커피숍에서 허성현 베가 스페이스 대표를 만났다.

작업실이 있는 세인트존스 베리 아카데미 내부는 방학 기간인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외부인 출입이 제한돼 방문하지 못했다.

허성현 군은 로켓 개발 전반을 관리하는 동시에 비즈니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박성재 군은 허성현 군과 함께 비즈니스 전략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임무를 맡았다.

최현우 군은 발사대 관리와 로켓 테스트를, 한승준 군은 로켓 발사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로 하고 있다.

양준우군 은 로켓 디자인을, 황준서 군은 베가스페이스의 공식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관리하는 홍보 업무를 맡았다.

사실 베가스페이스의 첫 시작은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었다.

설계 기술도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앨라배마주에 있는 우주·로켓센터에서 진행된 스페이스(SPACE) 캠프에 참가하고, 하늘에 별을 보면서 우주를 꿈꿨지만, 실전은 달랐다.

결국 개발 업무를 맡은 구성원들은 일단 닥치는 대로 로켓 관련 미국 원서와 논문을 읽으면서 설계 기술을 익혔다.

'옥토버 스카이'를 꿈꾸며…제주서 로켓 쏘는 소년들
초기 개발비는 허성현 군이 채팅 애플리케이션 디스코드(Discord)에 관리나 오락·편의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봇'을 만들어 판매한 수익으로 마련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로켓 개발이 아닌 학업에 열중하기를 바랐다.

로켓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워본 경험도 없고, 당장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개발 열정과 앞으로 계획에 대한 진정성을 보고서는 결국 허락했다.

미성년자인 만큼 필요한 시설과 화학 재료는 학교에서 관리·보존하기로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베가스페이스가 처음 개발한 것은 로켓의 '심장'인 엔진이다.

첫 엔진 '알파'는 직경 3㎝, 높이 5㎝ 지관과 점토로 만든 노즐을 결합해 제작했다.

연료와 추진제는 소비톨과 질산칼륨을 사용했다.

엔진 테스트 결과, 평균추력이 1.2㎏f 정도로 측정됐다.

무게 1㎏인 로켓을 하늘에 올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셈이다.

'옥토버 스카이'를 꿈꾸며…제주서 로켓 쏘는 소년들
베가스페이스는 이를 지렛대 삼아 두 번째 엔진 '미르' 개발에 나섰다.

첫 엔진과 달리 두 번째 엔진은 베가스페이스가 직접 설계도를 그리고 3D 프린터로 제작해보면서 그야말로 엔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버려진 3D 프린터 물만 2㎏에 달했다.

평면의 설계도를 실제 입체로 구현했을 때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엔진은 최종적으로 철을 깎고 용접해 완성됐다.

제작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4일 오후 6시 17분께. 베가스페이스는 또 한 번 미르의 연소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추력은 52㎏f였다.

베가스페이스는 오는 2월과 3월 사이 미르를 사용한 로켓 '미리내'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재사용 가능한 단일 단계 로켓인 미리내는 높이 1.5m, 직경 7.4㎝, 무게 2.5㎏으로, 고도 1㎞까지 발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리내 발사를 위한 로켓 착륙 시스템과 로켓 발사에 필요한 발사대, 로켓 안에 들어가게 되는 발사체 제어 시스템과 센서 송·수신 하드웨어 개발도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옥토버 스카이'를 꿈꾸며…제주서 로켓 쏘는 소년들
"발사만 하는 것이 아닌 착륙까지 시도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허성현 군은 "미리내는 자동화된 착륙 다리와 낙하산 배출 기능이 장착돼 있으며, 현재 이를 이용한 착륙 실험을 두 차례 진행해 두 번 모두 성공적으로 마친 상태"라고 답했다.

베가스페이스는 2023년까지 미리내 발사와 착륙 성공률을 90%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을 단기 목표로 한다.

허성현 군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 탐사기업 스페이스X처럼 발사뿐 아니라 착륙까지 도전해 엔진만 갈아 끼우는 방식으로 로켓을 재활용하고자 한다"며 "다만 기존 거대한 발사체 위주에 시장과 달리 신속한 재발사가 가능한 저비용, 모듈형 발사체를 중점적으로 개발해 민간 우주 운송사업을 선도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사실 학생 신분으로 학업과 병행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 로켓 개발비가 비싸 앞으로 자금을 조달한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며 "하지만 우리 세대는 우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친구들과 함께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