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 핵심축, 시작부터 흔들…정부 "즉시 항고할 것"
방역패스 효과성 논란도 가열…의료계 전문가들 의견 엇갈려
급제동 걸린 방역패스…'방역이냐, 기본권이냐' 논란 커질 듯(종합)
법원이 4일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에 대한 정부의 '방역패스'에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코로나19 방역의 핵심축인 방역패스가 아래에서부터 흔들리게 됐다.

이번 결정의 파장이 이들 시설에 국한되지 않고 방역패스가 적용되고 있는 시설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날 오후 청소년 방역패스를 반대하는 함께하는사교육연합 등 학부모단체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효력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지 않거나 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성인 '미접종자'는 그간 출입이 금지됐던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를 당장 이날 저녁부터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시험 등을 준비 중인 미접종 성인은 접종 완료 후 2주가 지났다는 증명서나 PCR(유전자증폭) 음성확인서가 없이도 학원에 등록할 수 있으며, 독서실과 스터디카페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는 행정소송 본안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유지된다.

급제동 걸린 방역패스…'방역이냐, 기본권이냐' 논란 커질 듯(종합)
이들 시설이 방역패스 의무적용 시설에 포함된 때는 지난해 12월 6일로, 정부 정책이 한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중단된 것이다.

정부가 방역패스제를 처음 시행한 것은 지난해 11월 초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를 시작하면서였다.

실내체육시설, 유흥시설 등 일부 고위험시설에만 방역패스를 도입했으나 이후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자 12월 6일부터는 방역패스 적용시설을 식당, 카페, 학원, 영화관, 독서실, 스터디카페, PC방 등으로 대폭 확대했다.

12∼18세 청소년에게도 방역패스를 적용하기로 한 시점은 오는 3월이어서 이번 판결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은 당장 없다.

애초 이번 가처분 신청은 입시를 앞둔 청소년이 학원 등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는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지만, 법원이 학습·직업선택권 및 자기결정권에 초점을 맞추면서 방역패스를 둘러싼 논쟁은 '연령'이 아닌 '기본권' 문제로 넘어가게 됐다.

현직 의사 등이 방역패스 정책 자체에 반발해 법원에 별도의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연일 집회 등을 통해 방역패스를 비판하고 있어서 줄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정부가 당초 지정한 방역패스 의무적용 시설은 유흥시설, 노래방, 실내체육시설, 목욕탕, 경륜·경정·경마·카지노, 식당·카페, 학원, 영화관·공연장, 독서실·스터디카페, 멀티방, PC방, 실내경기장, 박물관·미술관·과학관, 파티룸, 도서관, 마사지·안마소, 마트·백화점 등 총 17개 시설이다.

오는 10일부터는 대형상점과 마트, 백화점에도 방역패스가 신규로 적용되는데, 생필품을 판매하는 '필수시설'이라는 점 때문에 역시 논란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급제동 걸린 방역패스…'방역이냐, 기본권이냐' 논란 커질 듯(종합)
재판부는 이날 결정의 이유로 우선 정부의 처분이 '백신 미접종자가 학원 등의 시설을 이용할 권리, 학습권을 제한한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또한 "백신 접종자의 이른바 돌파 감염도 상당수 벌어지는 점 등에 비춰보면 시설 이용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백신 미접종자가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위험이 현저히 크다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작년 12월 중순께 12세 이상 전체 백신 미접종자 중 코로나19 감염자 비율이 0.15%이고 같은 연령대 백신 접종자 가운데 코로나19 감염자가 0.07% 정도로 두 집단 모두 감염 비율 자체가 매우 낮다는 근거를 댔다.

방역패스 제도가 미접종자의 학습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감염을 차단하는 효과성 또한 크지 않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코로나19 치료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 단계에서 백신이 적극 권유될 수 있지만, 그런 사정을 고려해도 미접종자의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충분히 존중돼야 하며 결코 경시돼서는 안 된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의 이같은 입장은 그동안 정부가 방역패스 시행의 근거로 내세웠던 논리와 상반되는 것이다.

정부는 오히려 방역패스가 코로나19 감염시 위중증·사망 확률이 크게 높아지는 미접종자를 보호하는 핵심 방역 정책라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현재 미접종자가 전체 성인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2%에 불과하지만, 중환자·사망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이 넘는다는 통계도 종종 예로 들었다.

특히 법원이 근거로 삼은 감염 비율이 지난달 20일 기준 1주간의 통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 상황을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 뿐더러, 백신 접종을 통해 2차 접종 후 감염이 되더라도 추가 전파 위험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에 즉시 항고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성인 인구의 6.2%에 불과한 미접종자가 12세 이상 확진자의 30%, 중환자·사망자의 53%를 점유하는 만큼, 현시점에는 미접종자의 건강상 피해를 보호하고, 중증 의료체계의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방역패스 적용 확대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재판부의 이번 결정은 일단 학원 등 일부 시설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방역패스 제도에 법원이 제동을 건 첫 사례라는 점에서, 유례없는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방역이 먼저냐, 기본권이 먼저냐에 대한 논쟁을 본격적으로 촉발하는 계기도 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에서는 학원 등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이 원래 과학적이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반응과 재판부가 방역상황을 일부만 보고 판단을 해 아쉽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왔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고정된 사람들이 이용하는 학원·독서실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지 않아 방역패스가 불필요하다"며 "식당·카페를 이용하지 못하면 집에서 먹으면 되지만, 학원과 마트는 기본권과 연결되어 있어 함부로 방역패스를 적용해선 안 됐다"고 강조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법원 결정의 큰 취지는 이해하지만, 작년 12월 2주차에 12세 이상에서 미접종자의 감염 확률이 2.3배 높았다는 것은 백신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라며 "재판부가 제시한 근거는 방역 전문가 입장에서는 부족해 보이고 방역상황을 협소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