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돌봄SOS 수요 늘며 예산 부족 현상…"돌봄, 마을 공동체가 함께 해야"
'돌봄도시락' 끊기게 된 할머니들에게 쏟아진 온정
서울 은평구에서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돌봄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해온 박지현 전환마을협동조합 이사장은 추석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한 달 동안 박씨가 만든 도시락을 받은 할머니들에게 더는 지원이 어렵다는 주민센터의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해 밥을 지어 먹을 수 없는 80대 할머니는 박씨가 이런 소식을 전하자 "애썼다.

어쩔 수 없지. 굶어야지"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같은 동네의 다른 80대 할머니 역시 도시락을 더 못 받을 처지가 됐다.

할머니는 홀몸노인이지만 쓰러져가는 집이 한 채 있고, 명절에 찾아오지도 않는 자식이 서류상에 있는 '복지 사각지대'다.

지난 한 달 박 이사장의 돌봄 도시락을 받은 할머니는 "어쩌다 얻어먹는 신세가 됐는지,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몸이 아프고 힘들어 농약을 사러 갔지만 자신에게 팔지 않아 죽지 못했다면서 우는 할머니에게 도시락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은 위로이기도 했다.

이런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지원하는 사업은 서울시가 2019년 시작한 '돌봄SOS센터'의 긴급 돌봄 서비스다.

긴급하고 일시적인 돌봄이 필요한 시민에게 일시재가(간병), 동행 지원, 집수리, 식사 지원, 안부 확인 등을 하는데, 은평구 등 노인·취약계층 비중이 높은 자치구 5곳에 시범 도입됐다가 코로나19가 창궐한 지난해 25개 전 자치구로 확대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는 7월까지 저소득 노인 중심으로 3만1천371명이 돌봄SOS를 이용했다.

102억여원의 예산이 쓰여 이미 지난해 1년치(약 70억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서비스 이용률이 가장 높은 분야는 식사 지원(45.5%)이다.

형편이 어렵거나 사고 등으로 몸이 안 좋아져 식사가 어려운 사람이 신청하면 주민센터가 지역 단체나 업체를 통해 도시락(기본 1개월 30식)을 보내는 방식이다.

비용은 배송료를 포함해 1끼에 7천800원이다.

노인 돌봄 수요가 늘면서 예산이 부족해진 곳도 있다.

은평구는 배정된 예산 8억여원을 소진해 최근 서울시로부터 3억원가량을 더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이사장은 19일 "그래도 지난해에는 한 달을 받고도 회복이 될 때까지 두세 달 연장할 수 있었는데, 요즘 어르신들 부탁으로 저희가 주민센터 등에 전화하면 '예산이 없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더라"며 "도시락을 받는 분들은 대체로 몸이 너무 안 좋은 사례가 많은데 끊어지게 되면 힘들어하셔서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전환마을협동조합의 도시락을 받는 노인은 20명에 이를 때도 있었지만 몇 달 새 차츰 줄어 지금은 대여섯명이 됐다고 한다.

은평구 관계자는 "돌봄SOS는 긴급 돌봄이 필요할 때 지원하는 제도로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할 경우 다른 도시락 배달 사업 등으로 연계하고 있다"며 "길게 도와드리면 좋지만, 수요는 늘었고 예산은 한정적이다.

일단 추가 예산이 확보됐으니 지원이 필요한 분이 계신지 현장에서 확인하도록 신경쓰겠다"고 말했다.

예산은 늘었다지만 당장 할머니들은 끼니 걱정을 해야 한다.

보다 못한 협동조합 조합원들은 한푼 두푼 마음을 모았고, 이틀 사이에 160끼의 도시락을 만들어 보낼 수 있는 돈이 만들어졌다.

박 이사장이 지난 15일 이런 사연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자 돈을 보내겠다는 주민 연락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조합은 두 할머니를 포함해 지원이 필요한 노인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돌봄은 정부 복지 시스템만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마을 사람들이 도시락을 만들어 가져다드리고, 어르신들과 관계도 만들면서 사각지대를 없애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