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통증의학 권위자…첫 한국형 인공심장 이식수술 참여
해외 오지 의료봉사 경험도…통증재활클리닉 개소 예정
"마취의는 수술실 조타수"…퇴임하는 이혜원 고대 교수
"1975년 입학해 그동안 학교와 병원에 제 청춘을 다 바쳤네요.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면 청춘'이라는 사무엘 울만의 시구절처럼 저는 여전히 청춘인 상태로 학교를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이혜원 고려대 의대 교수는 28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병원이 확장공사를 하고 수술방이 늘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함께 성장해 왔다"면서 소녀처럼 웃었다.

오는 31일 정년 퇴임하는 이 교수는 마취통증의학·보완통합의학 분야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경력을 쌓은 권위자다.

1975년 고려대 의대에 입학한 이 교수는 학부를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고려대 의학과 전임강사로 임용돼 28년간 모교 의대에서 교직 생활을 했다.

8년간 고려대의료원 안암병원 중환자실장으로 근무하고 마취통증학과장, 고려대 의무교학처장 등을 지냈다.

이 교수는 "환자들에겐 존재감이 없지만 마취과 의사 없는 수술은 없다"며 "마취과 의사가 수술이 잘 진행되도록 내내 환자 상태를 살피는 것은 폭풍우가 몰아쳐도 배가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노를 젓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995년부터 심장마취 분야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그는 2001년 국내 최초로 시행된 한국형 인공심장 이식수술에 마취의로 참여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의대 민병구 교수 등과 함께 국내 최초로 인공심장을 개발했고, 당시 심장병을 앓던 한 환자가 직접 찾아와 이식수술을 받고 싶다고 해 수술이 성사됐다"며 "완전 이식형 인공심장을 임상 적용한 건 세계 최초였다"고 설명했다.

이후 기증을 통한 심장이식이 보편화한 탓에 인공 심장 분야는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누군가의 희생 없이도 심장 이식이 가능케 하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려 살았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2009∼2010년 고려대 사회봉사단 부단장을 맡았을 때는 남태평양 피지의 정글에서 의료봉사를 했고, 현지에 도서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도서관 건립 사업을 마무리하려고 피지에 사전답사를 하러 갔을 때 주민들이 말 그대로 맨발로 다니는 모습을 봤다"며 "의사로서 봉사할 수 있는 일도 있겠다고 생각해 예정에 없던 의료봉사단도 자체적으로 꾸려서 갔다"고 말했다.

현지에 머문 기간은 열흘 남짓이었지만, 탈장 수술과 혹 제거 등 현장에서 가능한 수술을 10건가량 진행하고 환자 150명가량을 진료했다고 한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했지만, 더 많이 해주고 오지 못해 아쉬웠다고 회고했다.

2015년에는 아프리카 차드를 찾아 의료봉사를 하기도 했다.

고려대 입학 후 46년, 교직 생활 28년을 되돌아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퇴임 이후 새롭게 펼쳐질 인생이 더 바쁠 것 같다며 이 교수는 웃었다.

이 교수는 "퇴임하면 어딘가 섭섭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아 마음이 바쁘다"고 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싶다"는 그는 퇴임 후에는 통증재활클리닉을 열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