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 이렇게 못 끝내"…랩·게임 등 '언택트 대항전'
건국대-세종대, 코로나 학번들 '광진구 점령전' 흥행
"광진의 주인은 한 번도 바뀐 적 없지. 모양 빠지게 남의 학교 와서 밥이나 먹지."(세종대생)
"다른 대학교 데려와 줘 너네는 아닌 듯해. 우리 집보다 작은 캠퍼스 누가 다닌대."(건국대생)
지난 22일 '광진구 점령전'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채널에서 날 선 말들이 오갔다.

세종대 학생이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학생식당을 기웃거리는 건대생을 조롱하자, 건대생은 좁은 세종대 캠퍼스를 비웃은 것이다.

댓글 가운데 욕설도 튀어나왔지만, 대체로 "멋지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학교의 자존심을 건 '디스전'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광진구 내 이웃 학교인 건국대와 세종대 학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장기화로 삭막한 대학 생활을 보내던 와중에 이색 대항전을 열었다.

두 학교의 대항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항전을 기획한 이들은 '코로나 학번'으로 불리는 18∼21학번 9명이다.

캠퍼스 낭만을 꿈꾸며 입학했으나 코로나19로 축제 한 번 즐겨보지 못해 아쉬웠던 세종대 학생들이 "뭐라도 해보자"면서 건국대 동아리연합회에 이메일을 보낸 것이 계기였다.

뜻을 모은 이들은 2개월 동안 두 학교 동아리방을 일일이 찾아가 참여를 설득했다.

결국 24개 동아리가 참여해 건국대-세종대 동아리 대항전을 성사시켰다.

대항전 TF팀장 김양진(22)씨는 1일 "주변을 돌아보니 대학문화라고 할 만한 축제·행사들이 하나둘 사라져 아쉬웠다"며 "대학문화를 지키고 무료한 대학생활도 끝내고 싶었다"고 했다.

건국대-세종대, 코로나 학번들 '광진구 점령전' 흥행
이른바 '광진구 점령전'은 프로그래밍·온라인 게임·랩 등 10개 경쟁 부문으로 구성됐다.

프로그래밍 경기는 참가자들이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결과물을 제출하면, 두 학교의 프로그래밍 동아리 회장들이 더 나은 결과물이 무엇인지 토의해 승자를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온라인 게임은 더 많은 점수를 얻는 쪽이, 랩 배틀은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영상을 올려 더 많은 추천을 얻는 쪽이 승리하는 식이다.

점령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경기에서 이긴 팀이 특정 동네를 점령하고, 더 많은 동네에 깃발을 꽂은 학교가 승리한다.

물론 재미를 위한 '말뿐인' 점령이다.

세종대는 지난 12일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경기에서 승리해 광장동을 차지했고, 19일에는 프로그래밍 경기에서 이겨 능동에 깃발을 꽂았다.

건국대는 22일부터 25일까지 유튜브에서 진행된 힙합 디스전에서 승리해 중곡4동을 점령했다.

두 학교는 캠퍼스가 있는 화양동·군자동은 '비무장지대'로 설정됐다.

지난 5일에는 이곳에서 두 학교의 만화·서예·천체관측 동아리 4곳이 합동 전시회를 열어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코로나19 탓에 별다른 홍보도 못 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로 입소문이 나면서 힙합 디스전만 유튜브 조회 수 2만5천회를 넘겼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는 대항전에도 복병이었다.

지난 6월 말 수도권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될 조짐을 보이자 야구·농구·주짓수 등 대면 경기도 추진했으나 거리두기 4단계 시행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힙합 디스전을 끝으로 광진구 점령전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힘겨운 상황이지만 대항전을 마무리하겠다는 학생들의 의지는 강하다.

건국대생 신준용(21)씨는 "지난 2년간 축제도 못 열고 친구들과 만날 수도 없었는데 이번 행사를 보면서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다"면서 "가을에라도 상황이 나아져 경기가 열리면 좋겠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