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대형 로펌에 처음 입사해 4년간 일했던 변호사 A씨는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정보기술(IT) 대기업으로 지난해 말 자리를 옮겼다. 연봉을 줄여가며 이직을 결심한 것은 ‘내 삶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새벽 2~3시 퇴근하는 날이 1년에 절반 이상 되니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었다. 지금은 퇴근 후 개인 시간이 많아 만족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김앤장·태평양·광장 등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전문직의 상징’이다. 그런데 요즘 대형 로펌 업계에서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주니어 변호사들의 이직이 심심치 않게 생기고 있다. 각 로펌 대표변호사 사이에서 떠나는 ‘새싹’들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가 주요 고민거리로 떠올랐을 정도다.

이들이 가장 많이 이동하는 곳은 대기업이다. 일단 사내변호사로 옮기는 사례가 많다.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현실파’들의 선택이다. 한국사내변호사회에 따르면 국내 변호사 3만여 명 가운데 사내변호사는 50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2년차 대형 로펌 변호사 B씨는 “요즘 3~5년차 변호사들이 사내변호사로 옮기는 현상은 ‘러시’라고 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완근 사내변호사회 회장은 “조직관리 전략, 업계 동향 등을 빠르게 학습할 수 있어 기회의 장으로 여기고 사내변호사로 옮기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성을 좇아 IT 또는 사모펀드 업계로 옮기는 ‘모험파’도 있다. 국내 최대 로펌 소속 변호사 C씨는 “주니어 중엔 스톡옵션을 받고 스타트업으로 옮겨가는 친구도 있다”고 했다. 지난 4월엔 법률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로앤컴퍼니에 법무법인 광장 출신 이상후 변호사(33)가 합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흐름에는 변호사 업계에까지 불어닥친 코로나19발(發) 불황과 자산가격 급등도 영향을 미쳤다. 자격증이 노후를 보장해주지 못할 것 같은데, 아파트값까지 치솟는 걸 보면서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 대표변호사는 “대형 로펌에서 받는 고연봉으로도 서울에 내집을 마련하기 어려워지자 ‘이럴 바엔 대박을 노리겠다’며 회사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이들을 어떻게 잡을지가 요즘 최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