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이첩기준 논란…사유 없는 통지서로 종결
사건사무규칙도 애매…수개월째 미처리된 사건도
"공수처에 수사해달랬는데…" 민원인 불만 잇따라
노영언(67)씨는 지난 1월 22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전·현직 법원장과 판사 등 68명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는 공수처 '1호 접수' 사건으로, 판사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당이득 편취를 눈감아줘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공수처가 사건을 대검찰청으로 이첩 결정을 한 것은 지난 5월 6일. 1쪽짜리 이첩 통지서에는 '단순 이첩'이라는 결정 결과만 적혔다.

노씨는 이유를 듣기 위해 같은 달 13일 공수처를 찾아 공수처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은 대검에서 창원지검으로, 창원지검에서 창원 중부경찰서로 보내졌다.

노씨는 이달 창원 중부경찰서에 사건을 공수처로 다시 돌려보내달라는 진정을 넣었다.

공수처가 출범 후 수백건에 달하는 고소·고발·진정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하면서 그 기준이 '모호하고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노씨는 2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첫 접수를 위해 출범 사흘 전부터 과천에 올라와 기다렸다.

1호 접수라면 공수처가 신경 써주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고소인이 원하는 곳에서 수사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공수처에 수사를 요청한 시민단체들도 잇따라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수처는 최근 활빈단이 고발한 치안감 골프 접대 의혹과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이 고발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유치원 비리 고발 무마 사건을 경찰에 넘겼다.

반면 지난 2월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이 고발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의혹은 수개월째 처리되지 않고 있다.

서울경찰청이 지난 5월 공수처에 이첩한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특혜 조사' 의혹에는 김 처장도 연루돼 있지만, 이 또한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고발인인 투기자본감시센터 윤영대 대표는 "고의적인 시간 끌기에다 수사방해 행위"라고 주장했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장 재량으로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건사무규칙에는 범죄 유형과 피의자 특성, 사건의 규모와 내용을 보고 이첩을 결정해야 한다는 기준이 담겼다.

하지만 이첩 기준이 모호한 데다 통지서에 간단한 사유조차 밝히지 않는다는 게 민원인들의 불만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사건사무규칙 외에 이첩 기준에 대한 추가적인 내부 규칙은 없다"고 밝혔다.

이첩을 판단하는 사건분석조사담당 검사가 2명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고, 사건 처리 건수도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김 처장에 따르면 공수처는 최근까지 1천570건 안팎의 사건을 접수했고, 이 가운데 900여건을 처리했다.

처리된 사건 중 입건된 사건은 1% 수준으로, 나머지는 대부분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3천∼4천건은 처리해봐야 사건을 유형화하고 이첩 기준을 정할 수 있다"며 "신속성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 증거가 사라질 우려는 없는지, 수사 대상의 상황이 변동 가능성이 있는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