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100만명 중 무공훈장 수훈자는 약 18만명
정전협정 70년 다가오지만 미수령자 5만7천명 달하자, 2019년 조사단 출범
2년간 1만1천명에게 무공훈장 전달…"수훈자 살아계실 때 최대한 전해드리는 것이 목표"
[※편집자 주: 6·25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무공훈장 수훈자로 선정된 참전용사는 17만9천여 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정전 후 70년이 다 되도록 5만7천여 명에게 무공훈장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2019년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이 창설돼 1만1천여 명의 무공훈장을 찾아줬지만, 아직 4만 개가 넘는 무공훈장이 그 주인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연합뉴스는 호국의 달 6월을 맞아 '6·25전쟁 무공훈장 찾아주기 캠페인'을 다룬 6편의 기획기사를 송고해 전장에 몸을 던져 나라를 지키고자 한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의 의미를 되짚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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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만에 찾은 무공훈장 / 연합뉴스 (Yonhapnews)
[70년만의 무공훈장]① '70년간 주지 못한 무공훈장' 5만7천명을 찾아나서다

탐사보도팀 = 지난 2일 오후 3시. 전북 고창군청 군수실은 여느 때와 다른 모습이었다.

10여 명의 육군본부 관계자들과 고창군재향군인회 관계자들이 군수실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유기상 고창군수로부터 아버지의 화랑무공훈장을 전달받은 홍순옥(71) 씨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고(故) 홍인수 이등중사(하사)는 두 살배기 홍 씨와 아내를 남겨둔 채 1952년 입대했지만, 다음 해 6월 14일 강원 원동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휴전을 불과 한 달여 앞둔 때였다.

당시 홍 이등중사의 나이는 26세였다.

원동지구 전투는 중공군 2만6천여 명에 국군 8사단 장병 1만1천785명이 맞서 싸운 치열한 전투였다.

8사단 10연대 3대대 10중대 소속이었던 홍 이등중사는 적진 한복판에서 전사해 그 시신을 끝내 찾을 수 없었다.

홍 씨는 "당시 아버지의 전사 소식만 통보받고 유품이나 시신은 받지 못했는데, 서른다섯 살 때쯤 보훈처를 통해 유골을 찾지 못한 분들의 위패를 국립묘지 현충탑 지하에 모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때 아버지의 위패에 처음 인사드렸는데, 이번에 아버지의 무공훈장까지 전달받게 되니 감정이 북받친다"고 했다.

[70년만의 무공훈장]① '70년간 주지 못한 무공훈장' 5만7천명을 찾아나서다

지난 2019년 육군인사사령부에는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이 창설됐다.

조사단은 6·25 참전용사 중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도 무공훈장을 수령하지 못한 이들을 찾아 훈장을 수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6·25전쟁 참전용사 100만 명 중 무공훈장 수훈자로 선정된 참전용사는 17만9천331명이다.

하지만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년이 다 되도록 5만7천여 명에게 무공훈장이 전달되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훈장을 찾아주자는 취지에서 '6·25전쟁 무공훈장 수여 등에 관한 법률'이 2019년 4월 제정됐다.

국방부는 같은 해 7월부터 3년간 육군인사사령부에 조사단을 운영,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을 전개하기로 했다.

◇ 정전 70년 다 되도록 5만7천명 훈장 수령 못하자 2019년 조사단 출범
"전사자 현○○ 님을 찾아보겠습니다.

"
"여기 (나온 이름이) 부모님이나 유족분 (이름인) 것 같아요.

"
"아, 그렇네요.

전사자분은 기록이 안 나오니까 부모님이신 현○○ 님 쪽으로 연계해서 검색해보겠습니다.

"
"여기는 없는 것 같고, 다음 페이지를 볼까요? 여기 가족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
[70년만의 무공훈장]① '70년간 주지 못한 무공훈장' 5만7천명을 찾아나서다

지난달 31일 오후 1시 30분. 전북 고창군 성송면 사무소에서는 성송면 무공훈장 미수령 수훈자 10명에 대한 검색 탐문 작업이 한창이었다.

탐문은 조사단 소속 최상국 조사관의 주도로 이뤄졌고, 임설림 민원행정팀장이 호적(제적)부 조회 시스템으로 수훈자의 유족을 검색했다.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훈장 미수령자 5만7천여 명 중 1만1천여 명의 무공훈장을 찾아줬다.

앞으로 4만6천여 명을 더 찾아줘야 한다.

조사단이 지금까지 무공훈장을 찾아준 수훈자 중 생존자는 2.3%에 불과하다.

내년이면 생존한 참전용사의 비율이 1%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무공훈장 수훈자가 사망한 것으로 드러나면 유족에게 훈장이 전달되지만, 무공훈장 수훈자에게 매월 지급되는 무공영예수당은 당사자가 아니면 받을 수 없다.

조사단 관계자는 "수훈자분들이 살아계실 때 최대한 빨리 무공훈장을 찾아드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70년만의 무공훈장]① '70년간 주지 못한 무공훈장' 5만7천명을 찾아나서다

조사단은 전국을 3개 권역으로 나눠 3개 팀이 각 권역을 담당한다.

각 팀은 팀장까지 총 4명으로 이뤄졌다.

지자체 민원행정팀과 협조해 조사단이 보유한 기록을 바탕으로 호적(제적)부나 주민등록시스템 조회 등을 통해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 수훈자의 본적지를 찾은 뒤 생존자나 유가족의 현주소를 찾는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주민등록제도가 1968년에 생겼기 때문에 무공훈장 수훈자는 주민등록번호로 찾을 수 없다.

병적 기록부 등은 전시 상황에 작성돼 불명확하고 미비한 경우가 많다.

조사단은 수훈자들의 입대, 전투, 상이(傷痍) 등 여러 기록을 종합해 유가족을 찾는다.

하지만 아명(兒名)을 썼거나 작성된 생년월일이 실제와 다른 경우, 행정구역이 변동된 경우, 기록이 소실된 경우 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사단이 성송면에서 찾는 수훈자 10명의 경우 입대 당시 면이나 리 단위까지만 주소를 적었다.

해당 지역에서 유사한 이름을 사용한 사람들을 포함해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큰아버지 등 가족관계를 모두 추적해야 한다.

입대 당시 주소는 성송면으로 기록했지만, 전역 이후 본적지를 다른 지역으로 옮긴 경우에는 추가 자료를 확보해 탐문해야 한다.

최 조사관과 임 팀장은 1시간 동안 전사자 1명과, 전역 후 사망한 1명의 유족을 찾아냈다.

최 조사관은 "전사자분은 아버지가 아닌 큰아버지 밑으로 (제적등본에) 등재돼 있어서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다른 분은 장남이셨는데, 후손 없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동생의 자녀를 찾아 주소지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 시스템으로 조회 안 되면 지역주민 탐문…"선배들 희생 기리고자 최선 다해 찾을 것"
성송면 사례처럼 시스템 조회로 수훈자나 유족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료가 부족하거나 부정확해 조사관이 직접 마을을 다니며 수훈자를 아는 주민을 탐문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더구나 6·25 전쟁이 70여 년 전 발발해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는 생존자가 별로 남아 있지 않고, 고향을 떠난 주민들도 많아 찾기가 쉽지 않다.

[70년만의 무공훈장]① '70년간 주지 못한 무공훈장' 5만7천명을 찾아나서다

지난 1일 오전 10시. 전북 고창군 신림면 사무소에서 조사단 노현충 상사와 정재진 민원행정팀장은 수훈자 검색 탐문 작업을 시작했다.

정 팀장은 노 상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주민등록표 원장과 제적부를 대조해 3명의 수훈자를 찾아놓았다.

조사단이 신림면에서 찾아야 하는 수훈자는 총 10명이다.

노 상사는 "공무원이 수훈자를 미리 찾아주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며 "이렇게 도와주시면 작업이 훨씬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정 팀장의 아버지는 무공훈장 수훈자였다.

전쟁 중 받지 못한 무공훈장을 찾아드리기 위해 30년 전 온 가족이 애를 써서 병무청과 국방부에 증거 자료를 제출했다고 한다.

정 팀장은 "아버지의 무공훈장을 어렵게 찾아드렸던 기억이 있었는데, 국방부에서 민원인을 대신해 찾아준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직원들과 함께 찾아드렸다"며 "나머지 분들은 다른 읍·면까지 찾아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조사단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노 상사는 수훈자들이 남긴 여러 기록을 종합해 당시 장병들이 실제로 사용했을 마을 이름을 추정하며 찾아 나갔다.

그는 "예를 들어 당시 신림면에 외하리 마을이 있었다면 장병들은 '외하리'라고 적지 않고 '하하', '부하', '모하' 이런 식으로 기록했다"며 "조사관들은 이러한 추정을 바탕으로 수훈자의 본적을 찾아낸다"고 했다.

이렇게 추적해 노 상사가 본적을 찾아낸 수훈자는 4명이다.

정 팀장과 함께 수훈자 10명 중 7명의 본적을 찾아낸 것이다.

이들 중 전사자가 5명이었다.

나머지 2명은 전역 후 사망했다.

노 상사는 본적을 바탕으로 이들의 유족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팀장 최재원 소령은 나머지 3명의 수훈자를 직접 찾아 나섰다.

이현승(62) 신림면 임리 이장을 만나 수훈자 명단을 보여주며 "이○○ 님은 29년생이신데 전사하셨어요.

마을에 전사자 강○○ 님도 계셨는데 관련된 지인이 계실까요? 전쟁에 참전했다가 못 돌아온 분들을 아시는 분이 계실까요?"라고 물었다.

이 이장은 "(우리 같은) 참전용사 자식 세대는 이야기만 대충 들어서 알아. 우리만 해도 신세대에 속해서 우리 부모 세대를 찾아야 해"라며 "가장 빠른 방법은 (수훈자가) 이씨라면 이씨(가 많이 사는) 부락을 찾아가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을 찾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 소령은 신림면에서 50여 년을 살았다는 정태옥(70) 법지리 이장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정 이장은 "이○○이나 강○○는 잘 모르겠다.

이 마을에 참전용사가 많이 계셨는데 거의 돌아가셨다"며 "200호였던 마을이 지금은 100호까지 줄었다"고 말했다.

[70년만의 무공훈장]① '70년간 주지 못한 무공훈장' 5만7천명을 찾아나서다

무공훈장 수훈자를 찾는다는 소식에 차로 10분 거리를 달려온 이종길(72) 법지리 자치위원장은 "강○○ 씨는 이 동네 사셨던 참전용사 강모 씨가 아셨을 것 같은데, 재작년에 돌아가셨다"며 "10년만 빨리 이 사업을 시작했어도 좋았을 텐데 이미 많은 분이 돌아가셔서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노 상사는 "찾지 못한 3명의 수훈자는 자료를 보완해 다시 한번 신림면을 찾아오거나, 보완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할 경우에는 신림면 주민들께 협조 부탁을 드려 유가족분들이 조사단에 연락을 주실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사단장 신기진 대령은 "사업 진행에 가장 큰 어려움은 저희가 가진 병적 자료와 제적등본 자료가 상이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라며 "이름과 생년월일은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고, 병적 자료를 군에서 60∼70년대에 데이터베이스화하면서 한자를 오역해 기재한 경우도 많아 자료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 대령은 "그만큼 쉽지 않은 사업이지만, 몸을 던져 나라를 지키고자 한 선배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이분들을 다 찾아드릴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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