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녀당을 통해 엿본 해녀의 삶과 신앙

"너른 바당 앞을 재연 / ㅎ+ㆍ+ㄴ질두질 들어가난 / 저승질이 왓닥갓닥 / 탕댕기는 칠성판아 / 잉엉사는 맹정포야 / 못홀 일이 요일이여/ 모진광풍 불질말라" (너른 바다 앞을 재어 / 한길 두길 들어가니 / 저승길이 오락가락 / 타고 다니는 칠성판아 / 이어 사는 명정포야 / 못 할 일이 요일이네 / 모진 광풍 불지 마라, 제주 해녀 일노래 일부분)
[다시! 제주문화](12) 삶과 죽음의 경계…제주 해녀는 간절히 소망한다
제주 사람들은 삶의 터전이자 각종 먹을거리를 주는 바다를 '바당밭'(바다밭)이라고 불렀다.

해녀들은 이 바당밭에서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외줄을 타듯 힘겨운 삶을 이어왔다.

해녀들의 일노래에서처럼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물질'은 칠성판(七星板, 관속에 까는 널조각)을 타고, 명정포(銘旌布, 망자의 관직이나 성명이 적힌 관을 덮는 천)를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만큼 위험하고 힘든 노동이었다.

해녀들은 지금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터로 나간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과거 알몸 조업이나 무명옷 대신 고무로 된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가지만, 산소통 같은 어떤 잠수장비 없이 그저 한 번의 호흡만으로 물질을 한다는 데 있어선 예와 다를 바 없다.

[다시! 제주문화](12) 삶과 죽음의 경계…제주 해녀는 간절히 소망한다
물질은 목숨을 건 조업이다.

간혹 바다 한가운데 주인을 잃고 홀로 남겨진 테왁은 해녀 조업의 위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주에선 해녀들이 조업 중 탈진해 숨지는 사고가 해마다 여러 건씩 발생하고 있다.

아무리 강인한 제주 여성인 해녀들이라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이다.

그들에게도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자신과 동료를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 바다에서 해산물을 많이 채취해 가족을 건사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그대로 무속신앙으로 이어졌다.

[다시! 제주문화](12) 삶과 죽음의 경계…제주 해녀는 간절히 소망한다
제주 서귀포시 대포동 포구.
포구에서 바다를 보면 '자장코지'라고 하는 길게 뾰족 튀어나온 바위 무리를 볼 수 있다.

마치 바위들이 일렬로 바다를 향해 잠수해 들어가는 듯한 모습이다.

이 중에서도 꼭대기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모진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바위에 뿌리내린 나무 한 그루.
'바람을 닮은' 범상치 않은 그 자태에 누구라도 눈여겨볼 법하다.

그 바위는 해녀들이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을 때 찾는 신당(神堂)인 대포동 자장코지 잠녀당이다.

사실 해녀의 원래 이름은 'ㅈ+ㆍ+ㅁ녀'(잠녀, 潛女)였다.

말 그대로 잠수하는 여성이란 뜻으로, 일제 강점기를 기점으로 오늘날 해녀라는 말로 대체됐다.

[다시! 제주문화](12) 삶과 죽음의 경계…제주 해녀는 간절히 소망한다
바위에 자라난 나무는 신목(神木)이다.

신목에는 해녀들이 오래전에 걸어놓은 듯 지전물색이 감겨 있다.

바위 아래쪽엔 돌로 제단을 만들어놓았고, 제를 올린 흔적이 남아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해녀들이 치성을 드렸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대포동 어촌계 해녀들을 찾아가 잠녀당에서 제를 올리는 방식에 대해 물었다.

여러 해녀 할머니에게 물어봤지만 별다른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온 낯선 기자에게 잠깐 풀어낼 이야기가 아니었다.

침묵의 의미는 해녀들의 삶과 신앙의 무게처럼 묵직했다.

신당 연구를 해 온 하순애 박사의 저서 '제주도 신당 이야기'를 통해 자장코지 잠녀당에서 해녀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다시! 제주문화](12) 삶과 죽음의 경계…제주 해녀는 간절히 소망한다
「제물로 가져온 백지와 광목, 즉 지전물색을 걸기 위해 해녀들은 바위 꼭대기로 올라간다.

바다 쪽으로 바위를 감아 돌면, 발 디뎌 바위 꼭대기로 오르는 길이 나선형으로 나 있고, 그 길의 끝은 드러누운 그 바람 같은 나무이다.

이 관목에 지전물색을 거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제물로 가지고 온 보시메 세 그릇을 각각 한지에 싸서 주먹만한 크기의 '지'(紙)를 만들고 위태롭게 바위 꼭대기에 발붙이고 서서 그것을 바다에 던진다.

(중략) 편히 발 돌려 서기도 마땅찮은 그곳에 올라 잠녀들은, 우리네 어머니들은 이렇듯 바다에서 먼저 죽어간 이들을 위해 제물을 올리는 것이다.

시퍼런 바다를 목숨줄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이 그 바다에서 삶을 마감하는 그 비통함, 그렇게 떠나보낸 이들의 영(靈)을 기억하는 산 자들의 애통함, 종이에 한 웅큼 싼 밥으로 이어지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애절한 교감, 이렇게 우리네 어머니들은 그 바위 위에 서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도 죽음도 모두 끌어안은 가엾은 바다를 만나는 것이다.

[다시! 제주문화](12) 삶과 죽음의 경계…제주 해녀는 간절히 소망한다
해녀들의 이러한 의식을 감히 미신(迷信)이라고 평가절하할 수 있을까.

현대인의 시각에선 미신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믿음에 의지해 해녀는 80세 넘어서까지도 그 힘든 삶을 견딜 수 있었다.

해녀의 삶과 문화에, 또 할머니·할아버지 세대의 믿음과 신앙에 한 발짝 더 다가가면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 해녀의 무사안녕 기원 해신당
제주신화와 신당은 제주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의 근본을 이룬다.

신화와 신당을 알지 않고선 제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제주의 바닷가에는 어부와 해녀들이 '바다의 신'을 모시는 해신당이 있다.

개당, 돈짓당, 잠녀당, 남당, 할망당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바닷가 신당을 통칭하는 말이다.

[다시! 제주문화](12) 삶과 죽음의 경계…제주 해녀는 간절히 소망한다
해녀들은 개인적으로 정초에 신당을 찾아가 올 한 해 무사안녕과 풍성한 수확 등을 간절히 기원한다.

또 집단의례 형식으로 영등굿 또는 잠수굿 등을 올린다.

제주도와 제주연구원이 지난 2013년에 조사한 자료 '해녀문화유산 조사'에 따르면 제주에는 해녀들이 다니는 신당이 70여 개에 이른다.

지금은 각종 난개발 등으로 인해 신당 수가 더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포동 자장코지 잠녀당 바로 인근에만 하더라도 커다란 카페가 들어선 데 이어 수영장 등 각종 건설공사가 진행돼 마을 주민들의 집단반발을 사기도 했다.

종교 공간으로서 또는 문화재로서 신당을 보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제주문화](12) 삶과 죽음의 경계…제주 해녀는 간절히 소망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