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의 억울한 얘기를 한번 들어봐 주세요. 일방적인, 부당한 폐과 통보를 받았습니다.”

지난 3월 유튜브를 통해 게시된 ‘신라대학교 창조공연예술학부 무용전공 폐과 반대’ 영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신라대는 같은 달 전체 신입생 정원 15%를 축소하는 학과 구조조정 안건을 의결하며 무용·음악학과 등 예술 전공의 폐과를 단행했다.

이같이 취업에 불리한 인문·예체능 관련 전공이 사라질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의 정원 감축을 피할 수 없게 된 데다 교육부마저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순수학문 기반 사라질 수도”

21일 교육계에 따르면 비수도권 지역의 다수 대학은 올 들어 인문·예체능 계열 학과들에 대한 통폐합을 하고 있다.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들이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이다.

영남대는 최근 전체 58개 학과 중 음악과, 국어국문학과, 역사학과 등 7개 학과의 정원을 줄였다. 대구대는 유럽문화학과 모집을 중단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한국음악과 등 전공에서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른 지방 대학들의 학과 구조조정도 잇따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폐과 확대로 인해 순수학문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예체능 계열 교수는 “신라대 무용학과가 없어지면서 부산지역 무용학과는 부산대 한 곳만 남게 됐다”며 “지역 학문과 예술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원 감축 피하기 위해 ‘첨단학과’ 신설

정부가 신입생과 재학생 충원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채우지 못한 대학에 대한 정원 감축에 나서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 심화될 전망이다. 지난 20일 교육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을 발표했다. 정원 감축은 곧 등록금 감소를 의미한다. 등록금에 재정의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는 대학 입장에서는 신입생과 재학생 충원율에서 불리한 인문·예체능 계열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대학이 국가와 기업에 필요한 첨단 분야의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압박도 인문·사회·예체능 전공을 줄이는 요인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는 서울·경기권 주요 대학의 반도체 인재 양성을 지원하기 위해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을 손질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반도체업계의 인력난 해결을 위해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도 인공지능(AI) 등 첨단학과에 대해서는 정원 증원을 허용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자원이 한정된 대학들이 첨단학과 신설에 나서면서 ‘돈 안 되는’ 기존 학과들이 폐과 위기에 내몰리는 것이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교육부가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이상 대학 측은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등 지표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예체능 및 인문계열 학과들을 최우선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학생, 교수 등 학내 구성원들과의 갈등이 불가피하겠지만 최대한 민주적으로 합의해 학제 개편을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