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민형사책임 가리는 게 전부 아냐…피해회복·재발방지에 신경써야"
'성 호기심' 빨라지는 아이들…본질 못짚는 현장 대응

"엄마. ○○이가 화장실에서 여기를 만졌어."
올해로 만 5살인 A양은 가랑이 사이로 손을 넣으며 유치원 같은 반 남자아이의 이름을 말했다.

소변이 부쩍 잦아진 아이의 상태를 이상히 여긴 어머니가 "왜 그러느냐"고 여러 차례 묻자 아이는 유치원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서울의 한 유치원에 다니던 A양은 같은 반 B군이 화장실에 따라 들어와 자신의 중요 부위를 만지고 그의 성기를 보여줬다고 했다.

이 사실을 들은 A양 어머니는 이튿날 경찰에 신고했다.

유치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때 CCTV 영상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지라 경찰 도움을 받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24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경찰이 작년 11∼12월 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A양과 B군이 화장실에 함께 들어간 횟수는 총 5번이었다.

화장실 내에 함께 머문 시간은 짧게는 40초에서 길게는 1분20여초였다.

A양은 해바라기센터에서 피해 사실을 진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B군은 사건 당시 만 4세로 형사처벌이나 보호처분 대상이 아니어서 경찰은 내사종결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피해자인 A양 진술과 CCTV 영상만으로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도 판단했다.

초반에는 호의적으로 나오던 유치원도 경찰 조사 결과를 듣고는 방어적 태도로 돌아섰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부모 면담도 없었고 양측을 중재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는 것이 A양 어머니 주장이다.

A양 어머니는 심리적 피해 보상과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뜻을 유치원을 통해 B군 부모에게 전했으나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A양 어머니는 "남자아이가 너무 어려 애초에 형사처벌 목적으로 신고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경찰 도움을 받으려 했던 것"이라며 "진정으로 원한 건 상대편 부모의 인정과 사과였지만 아무 말도 듣지 못했고, 혼자서 사실관계를 입증하려는 과정에서 상처만 커졌다"고 했다.

A양은 경찰 조사가 시작된 후 유치원을 그만뒀다.

여전히 A양은 심리적 요인으로 소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생활한다.
'성 호기심' 빨라지는 아이들…본질 못짚는 현장 대응

◇ "영유아 성 행동 문제, 잘잘못보다 피해아동 회복 지원이 급선무"
이처럼 아이들의 성장이 빨라지면서 성에 대한 호기심이 이른 나이부터 생기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성 사건에 관한 현장의 대응은 본질을 짚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성인 간 사건과 달리 어린아이들의 경우는 잘잘못을 따지거나 형사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 만큼 눈높이를 달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는 "영유아의 경우 형사든 민사책임이든 잘잘못을 엄밀하게 가려 손해를 금전적으로 배상하게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전부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피해가 발생했다면 피해 아동이 조속히 회복할 수 있도록 주변 어른이 적극적으로 돕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9년 성남의 한 어린이집에서 아동 간 성 관련 사고가 발생한 뒤 관계부처는 후속조치로 '어린이집 영유아의 성행동문제 관리·대응' 매뉴얼을 내놨다.

매뉴얼에 따르면 일차적으로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어린이집 교사가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지도하고 부모와 소통해야 한다.

현장에서 이런 매뉴얼이 잘 지켜져야 피해 회복과 재발 방지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아이들 간 일일수록 기관의 중재가 중요하다"며 "기관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한다는 것을 피해 아동 부모가 느껴야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 부모도 피해를 호소하는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행동을 점검해보고, 문제가 발견되면 피해 아동과 가족에게 사과하고 '조기에 고칠 기회를 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한다"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피해 아동 가족도 상처를 회복하고 자연스럽게 용서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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