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황실 사냥 장면 묘사…문화재청이 약 11억원에 매입
"궁중화원이 김홍도풍으로 그려" "현존 호렵도 중 예술적 완성도 가장 높아"
작년 미국 경매서 사들인 18세기 후반 '호렵도 팔폭병풍' 공개
지난해 미국 경매에서 약 11억원에 낙찰된 '호렵도 팔폭병풍'이 미국에서 귀환해 일반에 공개된다.

호렵도(胡獵圖)는 '오랑캐가 사냥하는 그림'이란 뜻으로, 청나라 황제가 사냥을 즐기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문화재청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함께 지난해 9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호렵도 팔폭병풍'을 매입해 11월 국내로 들여왔으며, 18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 내 궁중서화실에서 공개한다고 밝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이 병풍은 1952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캐슬린 제이 크레인 박사가 소장했던 작품으로, 개인소장자가 크레인 박사 유족으로부터 사들여 경매에 출품했다.

이 작품이 언제 어떻게 미국으로 반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작년 미국 경매서 사들인 18세기 후반 '호렵도 팔폭병풍' 공개
이 호렵도는 병풍 8폭을 하나의 화폭으로 사용해 그려졌다.

병풍 전체 크기는 가로 385.0㎝, 세로 154.7㎝이며, 그림은 한 폭이 가로 44.3㎝, 세로 96.7㎝다.

병풍 1∼2폭에는 나뭇잎이 떨어진 나무와 폭포가 쏟아지는 스산한 가을 풍경이 묘사돼 있다.

3폭에는 화려한 가마를 타고 길을 나서는 황실 여인들이 등장하고, 4폭에는 나발과 피리를 부는 이들이 그려져 있다.

작년 미국 경매서 사들인 18세기 후반 '호렵도 팔폭병풍' 공개
5∼6폭에는 푸른 바탕에 흰 용이 새겨진 옷차림의 청 황제와 수행원, 다양한 자세의 기마 인물들이 묘사돼 있으며, 7∼8폭에는 호랑이와 사슴을 향해 활을 겨누거나 창을 휘두르는 사냥꾼들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표현돼 있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일반적인 호렵도는 전체 화폭에서 사냥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호렵도는 1∼6폭에 황제와 황실 여인들의 행렬을, 7∼8폭에 수렵 장면을 담아 황제 일행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미국 경매서 사들인 18세기 후반 '호렵도 팔폭병풍' 공개
호렵도는 정조(1752∼1800) 때부터 제작됐다.

조선에서는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거치며 청에 대한 배척의식이 높았지만, 정조 4년(1780년) 건륭제 칠순 잔치에 사절을 보내면서 관계가 호전됐다.

아울러 청의 문물이 대거 유입되며 청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정 교수는 "호렵도는 이런 시대 상황에서 마상무예를 강조한 정조(1752∼1800)의 군사정책과 맞물려 제작됐다.

즉, 정조의 무예 정책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작년 미국 경매서 사들인 18세기 후반 '호렵도 팔폭병풍' 공개
호렵도를 처음 그린 화가는 단원 김홍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임원경제지'에 기록으로만 전하며, 국내 현존하는 호렵도 병풍은 대부분 민화풍이다.

이번에 환수된 호렵도 병풍 8폭 하단에서는 김홍도의 낙관이 보인다.

하지만 정 교수는 "김홍도의 화풍과 산·나무의 표현이 닮았지만 옷 주름 등이 달라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18세기 후반 도화서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묵으로 표현한 산수, 화려한 채색으로 묘사한 인물 등 지금까지 알려진 호렵도 중 예술적 완성도가 가장 높은 작품이다.

아울러 정조 때 북학과 군사정책을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호렵도의 시작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어서 이번 환수가 뜻깊다"면서 "그동안 민화를 중심으로 한 호렵도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고, 전시·교육 등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